▲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3.
그 중에서도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물의 분노다. 그 방향성과 역학 관계. 모든 분노가 직접적인 연결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분노를 하나의 자리에 맞대어 보면 이는 시대의 계급구조와 그 모양을 함께한다.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한 하노의 분노와 쌍둥이 왕에 대한 아카시우스 장군의 분노다. 수직적으로 구성된 이 분노의 연결고리는 형성의 지점에서 서로에게 작용하지 못하지만, 해체와 붕괴의 지점에서 영향을 미친다.
루실라에 의해 하노가 자신과 막시무스의 아들임이 드러나는 순간, 노예 검투사가 로마의 장군에게로, 다시 로마의 장군이 황제에게로 향하던 분노의 수직적 구조도 이때 무너지고 만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분노가 잠시 거두어지고, 하노를 내려다보게 되는 지점이다. 신분의 상승을 꾀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크리누스의 계략에 의해 모든 반란 계획이 드러나며 무산되고 만다.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루실라의 부탁에 의해 처음의 계획이 지연되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하노가 원했던 아카시우스 장군과의 대결이 콜로세움에서 성사된다. 분노를 가슴에 새기고 있는 자와 저지당한 자의 대결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꺾인 분노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이제 분노의 수직화는 재편된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것은 하노에게 넘겨지고, 이를 물려받은 인물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루시우스를 받아들인다. 영화적으로 두 황제의 처단을 직접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의 모든 탐욕을 이양받은 마크리누스와의 대결이 성사되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놓인다.
04.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있어 순식간에 타락해 들어서기 쉽다."
그 과정에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설정 하나가 로마 외부에서 성장한 핏줄과 관련한 서사다. 정확히 하노가 가진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의 초반부에서부터 영화는 이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전투에서 패배 후, 로마로 끌려오는 수송선에서 나오는 대사인 하노가 사막에서 온 외로운 아이라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이야기여서다. 이 내용은 늑대의 젖을 먹고 성장했다는 고대 로마의 설화가 담긴, 도시 외곽 구조물의 형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결국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고국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새 시대의 기수가 된다.
고전적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형태다. 24년 전의 작품의 속편을 지금 시대에 만들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이 영화는 자신의 단순하고 고전적인 면모를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다. 모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몇몇 지점을 이야기한 것처럼 전작과의 동일성 또한 마찬가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히려 가장 익숙한 것으로 대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영화의 첫 전투 시퀀스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90년대를 전후로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봐왔던 장르 영화의 전형. 이 영화의 목적은 분명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