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싸이더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내내 고등학교 3학년 담임만 맡아왔던 희연(장윤주 분)은 이번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요청했다. 난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서다. 학생들 진학도 곧잘 해내던 선생이 갑자기 학년을 이동한다니 주변에서는 이유를 궁금해하지만 굳이 사실을 밝히지는 않는다. 비슷한 시기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 가운데 임신한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같은 반 학생 유미(최수인 분)다. 임신 초기 증상으로 내내 졸려 하는 학생과 점심시간도 걸러 가며 한약을 챙겨 먹고 쪽잠을 청하는 선생님. 영화 <최소한의 선의>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의 장면을 교환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임신을 소재로 서로 다른 자리에 놓인 두 인물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과 갖고 싶지 않았으나 임신하고만 인물이다. 두 사람은 심지어 담임과 학생이라는 서로를 외면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그동안 청소년 임신을 다룬 다른 작품이 오롯이 그 지점만 바라보던 방식과 달리, 그 자리에 관계의 축을 하나 더 부여한 셈이다. 다만 이러한 설정이 인물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학생을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선생의 입장으로 인해 희연의 난임 문제는 유미의 임신 문제에 후행하며 미뤄지는 측면이 있다. 이는 해당 인물이 이해에 이르기까지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02.
김현정 감독은 그동안의 작품 활동을 통해 '이해'의 의미를 탐구하고 표현하는데 많은 애를 써왔다. 현실적인 문제와 어긋난 관계로 인해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던 인물이 점차 거리를 좁혀가는 식의 방법을 통해서다. 화해나 수용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도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현실감이 반영된다. 우리 모두는 타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까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완벽히' 할 수는 없다. 작품으로 보자면 가까이는 <흐르다>(2023)의 아버지 형석(박지일 분)과 딸 진영(이설 분), <유령극>(2023)의 할아버지(서인수 분)와 손자(고예준 분)가 있다. 이들 모두는 이해의 과정을 통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되거나, 되고자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의 결이 느껴진다. 중심이 되는 것은 희연이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그는 같은 반 학생 유미에게 원칙적이면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서 내보낼 궁리를 하는 다른 선생님에 비하면 퇴학보다는 자퇴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쪽에 속하지만, 그 역시 선의에 의한 것은 아니다. 집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는, 중절 수술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유미의 요청에도 상황을 알아보기보다는 원칙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 의한 딸의 자퇴 권유 앞에서 공교육의 책임과 소신을 되묻는 유미의 아버지 앞에서도 자신에게 학생은 유미 하나만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이 그다.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는 경험의 공유다.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임신에 성공한 후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만삭 유미가 하혈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희연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유미의 경험이 학생의 임신이 아닌 여성의 임신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희연이 내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라는 것의 형태와 범위가 완전히 달라져서다. 임신한 학생이 퇴학이 아니라 자퇴를 할 수 있게 돕는 선의는 이제 임신한 여성이 원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선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