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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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도 아기 버렸어? 엄마들은 왜 항상 아기를 버리는데?"
영화 <최소한의 선의>에서 전면에 내세워지는 것은 희연과 유미 사이의 관계지만, 흔들리는 두 사람을 지지하기 위한 주변 인물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여기에서 지지한다는 뜻은 뒷받침한다는 것이지 찬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령, 유미에게 있어 서브 텍스트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동생 유정(김수형 분)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해 왔다. 특히 8살 때부터 언니의 돌봄을 받아왔던 동생에게 유미의 임신은 잘못이 아닌 축복의 대상이 된다. 미혼모 센터에서 유미가 돌아오던 날 처음 만날 조카의 분유를 사서 돌아온 것도 그래서다. 집에 조카가 없다는 사실이 자신들을 버린 엄마와 연결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유정과의 관계, 동생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유미가 결정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희연에게는 남편 재우(김민재 분)가 있다. 그는 아직 협의의 선의를 갖고 있는 희연에게, 조금 더 나아가 영화 전체에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도울 수 있는 능력과 환경 속에 있는데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지 않는 일이 부도덕한 일인가 하는 문제다. 이 장면에서 희연은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버겁다고 말하지만, 영화가 이 장면을 연결하는 대상은 그가 말하는 현실이 아닌 바로 다음 장면인 급식실 신이다. 2주 만에 학교에 나타나 급식을 먹고 있던 유미를 고압적인 태도로 내쫓으려는 희연의 모습. 남편의 말을 인정하기는 어려우니, 되려 직책과 위치를 내려놓으려는 듯한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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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임신으로 인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유미의 외로운 자리를 담아내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학교에 나쁜 소문이 돌지 않도록, 자녀의 환경으로부터 제거하기 위해서 학교로부터 퇴출시키려는 어른들이다. 태어날 아이의 아빠인 주원(정순범 분) 또한 수술비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하는 듯 보이지만, 학업을 핑계로 유미의 곁으로 되돌아올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자신의 실수를 흠 없이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만 행동하는 모습. 집에서 쫓겨난 유미를 집에서 돌보고 싶은 친구 강희(수현 분)의 엄마 역시 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어떻게든 구슬려 내보낼 생각뿐이다.
그나마 도움을 받게 되는 쪽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 진경(양조아 분)이지만, 그 역시 재혼을 한 탓에 오롯한 보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후 미혼모 센터에 입소해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격렬히 반대하던 아버지의 곁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오죽하면 센터의 같은 방을 쓰던 또 다른 미혼모는 아이를 빨리 입양 보내고 복학하라고, 정이 들면 아이를 떠나보내기 어려우니 마음 약해지지 말라는 현실적인 말들만 늘어놓는다. 화면 바깥에 유미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산모가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