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스틸컷
KBS
번져가는 슬픔 가운데 기쁨을 지키는 일
주목할 것은 안나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안나는 거북이알과 대화를 나눈 뒤 레고를 사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레고를 저를 울게 한 케빈에게 선물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 여겼지만 그에게 다가서 먼저 선물을 건넨다. 둘은 함께 웃고 조금 더 다가선다. 아마도 둘 사이의 무언가가 전과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희망이다.
거북이알과 안나는 부당한 세계에 동조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 가운데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바꾸고 그 부당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방식으로, 안나는 보고 싶은 공연에 큰돈을 쓰고 동료에게 먼저 다가서는 방식으로 저를 지키려 한다. 온통 자존감을 갉아먹는 세상 가운데서도 개인이 이뤄내는 소소한 기쁨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이처럼 작은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제 마음과 같지 않은 세상에 내던져져 적응하길 강요받는 개인들이 저를 잃지 않고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가만히 보다보면 안나와 거북이알, 케빈이 나와 너, 우리가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것이 잘못됐다는 걸 잊지 않고서, 그러나 현실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간의 서글픔과 즐거움을 함께 갖고서 말이다.
불행히도 우리가 일의 기쁨을 찾을 곳이 갈수록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들이 거듭된다.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불안해지는 일자리와 갈수록 떨어지는 노동의 가치들이 모두 그렇다.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꼰대와 어린녀석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따위로 서로를 구분하고 갈등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며칠이 멀다하고 뉴스에 거듭 등장한다. 갈수록 커져가는 슬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지켜야 할까.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고 난 뒤 떠오르는 숙제는 바로 이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