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를 줍다> 스틸컷
영화로운형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수(김재경 분)는 밤마다 쓰레기장의 쓰레기봉투를 집으로 들고 올라온다. 일회용 장갑까지 끼고 화장실 욕조 안에서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하나하나 풀어헤친다. 모두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그녀는 이렇게 찾아낸 타인의 탈피물을 분류하고 촬영하여 기록해 둔다. 지수에게 있어 이 기이한 행위는 그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방식이다. 흔적의 집합은 그 대상이 지나온 시간과 행동, 취향을 알 수 있게 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더미 안에서 그녀는 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빼곡히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지수의 옆집으로 우재(현우 분)가 이사를 오게 된다. 그의 첫 쓰레기가 버려지던 날, 그녀는 묘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바짝 마른 상태로 버려진 티백과 마른 헝겊에 잘 쌓인 채로 들어 있던 관상용 물고기 한 마리. 이렇게 정갈한 방식으로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쓰다듬는 사람은 처음이다. 같은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져 있었지만 다른 쓰레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타인의 정보를 모으고 흔적을 뒤집는 행동은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지만 지금의 호기심은 그렇지 않다.
영화 <너를 줍다>는 지난 사랑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누군가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의 심리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타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심리와 그들의 쓰레기봉투를 뒤져서까지 그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지수라는 인물을 처음부터 고립된 장소에 던져 놓는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고 타인의 정보로만 가득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고 껍데기만 가득한 외로운 공간 속에. 이 자리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02.
"버려진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밀키트 업체의 마케터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지수는 고객을 대하는 일에서도 그들의 행동이나 특징을 모두 데이터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빅데이터 시대에 당연한 일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조금 과한 부분이 있다. 구매자들의 욕구와 필요를 미리 파악하여 상품을 제안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퇴근 시간은 언제인지, 언제 주문하길 좋아하는지 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든 고객의 특징을 자료화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머물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통해 주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모습이 특정한 공간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터와 집, 하루를 보내는 공간 모든 곳에서 일관적인 모습이다. 아파트 단지에서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바로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요즘의 주거 환경에서 사소한 정보들까지 얻기 위해 필요했던 고육지책의 방식이 쓰레기 해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는 이 행동의 발단이 개인적인 성향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前) 남자친구였던 동호(황상경 분)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등장하는 이유다. 지수에게는 지난 사랑의 아픔이 있다. 자신의 앞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던 존재의 또 다른 사랑을 지켜봐야만 했던 일. 그녀가 타인의 모든 것, 숨겨진 자리까지도 솔직하고 빼곡하게 알고 싶은 이유다.
그런 지수가 우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그 감정이 쓰레기봉투 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가진 상태. 일반적인 상황의 만남이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앞으로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녀가 가진 이점이다. 계속해서 배출될 우재의 쓰레기로부터 그런 정보들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작은 믿음들이 지금의 지수에게는 있고, 이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