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를 줍다> 스틸컷
영화로운형제
03.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은 지수보다 우재인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난 사랑 위에 새로운 사랑을 꽃피우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인물. 제멋대로 감정을 표현해 오던 지난 여자친구 세라(김률하 분)와는 다르게 취향도 성향도 비슷한 지수를 사랑하게 되는 존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수로 하여금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수는 우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우재는 지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처럼, 영화가 보여주는 두 사람 사이의 정보 불균형은 처음부터 그녀의 감정이 그릇된 방식으로 잘못된 위치에 자리했음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지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인연인 듯 느끼는 우재의 감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집으로 잘못 전해진 세라의 소포를 바로 돌려주지 않기도 하고, 부탁받은 반지 역시 결국 전달하지 않는 모습. 그런 내막을 알리 없는 우재의 순수한 감정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재의 존재는 지수가 마치 지난 사랑이었던, 자신이 그렇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던, 전 남자친구 동호와 비슷한 모양이 되도록 만든다. 그의 곁에 머물면서도 감춰진 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과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자신의 상처를 핑계로 과거 자신이 슬퍼했던 모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 사람이 보여주는 대로 봐주는 것도 좋지 않느냐는 우재의 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04.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재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 동안에는 아파트 수거장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지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라와의 일로 인해 우재와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서 다시 쓰레기장을 뒤지기 시작하기 전까지다. 그녀의 행동이 지난 사랑과 상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또한 이 지점의 표현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상한 취미는 그녀에게 있어 홀로 남겨진 자신을 지켜내는 행동이기도 하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안도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지금 잘못된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
물론 그런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지수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과 (이 경우에도 당사자의 동의가 분명히 필요하다)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위안, 조금 더 손쉬운 관계의 시작을 위해 타인의 정보를 취득하고 수집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의미다. 감독 역시 이 지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냐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던 민서(최효은 분)의 말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지수를 들여다보는 시선과 이를 마주하는 다른 인물들의 태도를 그려내는 시선에 경계를 둔다.
오랜 시간 속에서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 주고받은 정보와 일방적으로 수집된 정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극 중 지수의 방식에 의한 정보는 얕고 가볍다.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모두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며, 그조차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할 뿐 진짜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상대에게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