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를 줍다> 스틸컷
영화 <너를 줍다> 스틸컷영화로운형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수(김재경 분)는 밤마다 쓰레기장의 쓰레기봉투를 집으로 들고 올라온다. 일회용 장갑까지 끼고 화장실 욕조 안에서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하나하나 풀어헤친다. 모두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그녀는 이렇게 찾아낸 타인의 탈피물을 분류하고 촬영하여 기록해 둔다. 지수에게 있어 이 기이한 행위는 그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방식이다. 흔적의 집합은 그 대상이 지나온 시간과 행동, 취향을 알 수 있게 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더미 안에서 그녀는 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빼곡히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지수의 옆집으로 우재(현우 분)가 이사를 오게 된다. 그의 첫 쓰레기가 버려지던 날, 그녀는 묘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바짝 마른 상태로 버려진 티백과 마른 헝겊에 잘 쌓인 채로 들어 있던 관상용 물고기 한 마리. 이렇게 정갈한 방식으로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쓰다듬는 사람은 처음이다. 같은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져 있었지만 다른 쓰레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타인의 정보를 모으고 흔적을 뒤집는 행동은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지만 지금의 호기심은 그렇지 않다.

영화 <너를 줍다>는 지난 사랑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누군가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의 심리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타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심리와 그들의 쓰레기봉투를 뒤져서까지 그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지수라는 인물을 처음부터 고립된 장소에 던져 놓는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고 타인의 정보로만 가득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고 껍데기만 가득한 외로운 공간 속에. 이 자리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02.
"버려진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밀키트 업체의 마케터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지수는 고객을 대하는 일에서도 그들의 행동이나 특징을 모두 데이터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빅데이터 시대에 당연한 일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조금 과한 부분이 있다. 구매자들의 욕구와 필요를 미리 파악하여 상품을 제안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퇴근 시간은 언제인지, 언제 주문하길 좋아하는지 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든 고객의 특징을 자료화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머물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통해 주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모습이 특정한 공간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터와 집, 하루를 보내는 공간 모든 곳에서 일관적인 모습이다. 아파트 단지에서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바로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요즘의 주거 환경에서 사소한 정보들까지 얻기 위해 필요했던 고육지책의 방식이 쓰레기 해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는 이 행동의 발단이 개인적인 성향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前) 남자친구였던 동호(황상경 분)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등장하는 이유다. 지수에게는 지난 사랑의 아픔이 있다. 자신의 앞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던 존재의 또 다른 사랑을 지켜봐야만 했던 일. 그녀가 타인의 모든 것, 숨겨진 자리까지도 솔직하고 빼곡하게 알고 싶은 이유다.

그런 지수가 우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그 감정이 쓰레기봉투 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가진 상태. 일반적인 상황의 만남이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앞으로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녀가 가진 이점이다. 계속해서 배출될 우재의 쓰레기로부터 그런 정보들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작은 믿음들이 지금의 지수에게는 있고, 이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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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은 지수보다 우재인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난 사랑 위에 새로운 사랑을 꽃피우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인물. 제멋대로 감정을 표현해 오던 지난 여자친구 세라(김률하 분)와는 다르게 취향도 성향도 비슷한 지수를 사랑하게 되는 존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수로 하여금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수는 우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우재는 지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처럼, 영화가 보여주는 두 사람 사이의 정보 불균형은 처음부터 그녀의 감정이 그릇된 방식으로 잘못된 위치에 자리했음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지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인연인 듯 느끼는 우재의 감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집으로 잘못 전해진 세라의 소포를 바로 돌려주지 않기도 하고, 부탁받은 반지 역시 결국 전달하지 않는 모습. 그런 내막을 알리 없는 우재의 순수한 감정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재의 존재는 지수가 마치 지난 사랑이었던, 자신이 그렇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던, 전 남자친구 동호와 비슷한 모양이 되도록 만든다. 그의 곁에 머물면서도 감춰진 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과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자신의 상처를 핑계로 과거 자신이 슬퍼했던 모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 사람이 보여주는 대로 봐주는 것도 좋지 않느냐는 우재의 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04.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재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 동안에는 아파트 수거장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지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라와의 일로 인해 우재와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서 다시 쓰레기장을 뒤지기 시작하기 전까지다. 그녀의 행동이 지난 사랑과 상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또한 이 지점의 표현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상한 취미는 그녀에게 있어 홀로 남겨진 자신을 지켜내는 행동이기도 하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안도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지금 잘못된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

물론 그런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지수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과 (이 경우에도 당사자의 동의가 분명히 필요하다)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위안, 조금 더 손쉬운 관계의 시작을 위해 타인의 정보를 취득하고 수집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의미다. 감독 역시 이 지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냐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던 민서(최효은 분)의 말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지수를 들여다보는 시선과 이를 마주하는 다른 인물들의 태도를 그려내는 시선에 경계를 둔다.

오랜 시간 속에서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 주고받은 정보와 일방적으로 수집된 정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극 중 지수의 방식에 의한 정보는 얕고 가볍다.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모두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며, 그조차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할 뿐 진짜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상대에게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영화 <너를 줍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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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자신의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은 우재에게 지수는 변명처럼 그저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재와의 감정이 깊어지는 동안 지수는 깊은 방 안에 전시되어 있던 주민들의 쓰레기 더미 속 정보를 상자 속에 담아 정리하려고도 했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벌을 지금 받게 된 것일 뿐이다.

어떤 행동의 반동(反動)은 정동(正動)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제 모습을 알고 있기에 거울 속의 모습으로부터 잘못된 부분을 알아차리곤 한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지수를 바라보던 우재의 순수한 감정과 그런 우재를 통해 사랑의 진짜 모습을 깨달아가는 지수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너를 줍는 일이 아니라 너를 마주하고 알아가는 일. 네 사랑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영화 너를줍다 김재경 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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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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