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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피 흘리는 박중훈, 배급사의 '당당한' 스포일러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박중훈 90년대 최고의 연기로 꼽히는 <게임의 법칙>

21.03.15 15:16최종업데이트21.03.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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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부터 국내에 발행되기 시작한 로또 복권은 주택복권, 체육복권 등 기존의 복권들을 압도하며 단기간에 '복권계의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로또 판매점 앞을 지나가면 동네마다 '1등 당첨 점포'라고 써 붙여 놓은 집이 많지만 실제 로또의 당첨 확률은 무려 1/814만5060에 이른다. 정답을 모르는 5지선다형 10문제를 연속으로 맞힐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천지가 개벽할 행운이 오지 않으면 로또 당첨은 '그림의 떡'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로또 복권의 판매량은 해마다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작년에도 로또 판매량은 전년대비 10.1%가 증가했다. 또한 최근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는 등 주식시장이 호황을 이루고 코인 가격이 다시 상승하자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고 코인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평생 돈을 모아도 내 집 한 칸 갖기 어려운 세상에 남은 희망은 로또나 코인 같은 '한방'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신에게 기도해도, 아무리 스스로를 '럭키가이'라고 믿어도 하늘의 운을 받을 확률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생역전'을 위한 한방을 기다리다가 그것을 모두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처절한 최후를 맞는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린 장현수 감독의 영화 <게임의 법칙>은 노력에 의한 전진보다는 '한방'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게임의 법칙> 포스터는 박중훈의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포스터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고 말았다.
<게임의 법칙> 포스터는 박중훈의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포스터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고 말았다.(주)세양필름
 
<투캅스> 이후 선택한 박중훈의 액션 누아르

코로나 시대 전까지만 해도 천만영화가 1년에 두 세 편씩 쏟아졌기에 '이 시대 최고의 배우'를 한 명만 꼽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배우층이 넓지 않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특정 배우가 한국 영화계 전체를 이끌었다. 성우와 탤런트를 시작으로 <닥터봉> <은행나무침대> <넘버3> <접속> < 8월의 크리스마스 > <초록물고기> <쉬리> 등을 차례로 히트시킨 한석규는 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독보적인 '원톱 스트라이커'였다.

그리고 한석규가 등장하기 전에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박중훈이 강우석 감독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투캅스 1,2> <마누라 죽이기> 등을 통해 90년대 초·중반을 '하드캐리'했다. 특히 박중훈은 <돈을 갖고 튀어라>와 <총잡이> <할렐루야> <현상수배> 등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서 탁월한 감각을 과시했다. 그런 박중훈이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 사이에 선택한 영화가 바로 한국형 누아르 <게임의 법칙>이었다.

박중훈은 <게임의 법칙>에서 영웅을 꿈꾸는 시골 양아치 용대를 연기하며 한 방을 노리는 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조금은 허세가 섞인 듯한 박중훈의 껄렁껄렁한 연기는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영구형사를 통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20년도 훨씬 더 지난 영화지만 지금도 상당수의 영화팬들은 박중훈 90년대 최고의 연기로 <게임의 법칙>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임의 법칙>은 박중훈뿐 아니라 히로인 태숙을 연기했던 배우 오연수에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안양예고 3학년이던 1989년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오연수는 <춤추는 가얏고>의 주인공에 발탁되며 청순한 외모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오연수가 영화 데뷔작 <장군의 아들3>에서 맡은 역할도 김두한(박상민 분)과 곤도 중위(독고영재 분)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단아한 가수 장은실이었다.

그렇게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유지하던 오연수에게 애인을 따라 상경했다가 배신을 당하고 술집으로 팔려 가는 <게임의 법칙>의 태숙은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오연수의 기존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는 관객이라면 <게임의 법칙>에서 걸쭉한 욕을 내뱉고 애인 잘못 만나 기구한 삶을 사는 태숙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한방'을 노렸지만 '한방'에 무너진 용대의 꿈 
 
 <게임의 법칙> 라스트신은 한 방만 쫓는 인간의 최후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임의 법칙> 라스트신은 한 방만 쫓는 인간의 최후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주)세양필름
 
<게임의 법칙> 속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지금은 '악역 전문 배우'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이경영이다(물론 지금의 중후한 느낌이 나오기 전, 파릇파릇하던 30대 중반 시절이다). 만수(이경영 분)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용대(박중훈 분)에게 사기를 치며 강렬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만수는 뛰어난 사기 기술에 비해 '도박중독'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불구가 된다. 갈 곳 잃은 만수는 폭력조직 광천파의 중간보스로 올라간 용대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용대에게 사이판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용대는 시큰둥하게 듣고 넘어가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만수의 말을 새겨듣는다. 원수로 만난 두 남자가 친구가 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련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90년대 한국 영화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액션도 <게임의 법칙>을 관람하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국내 최고의 무술감독으로 불리는 정두홍 감독이 액션을 진두지휘했고 고 이일재, 장세진 등 액션연기에 익숙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거칠고 리얼한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뭐니뭐니해도 <게임의 법칙> 최고의 명장면은 역시 충격적인 라스트신이다. 광천파 두목인 유광천(하용수 분)의 명령으로 김검사(유식 분)를 살해한 용대는 유광천으로부터 거액을 받기로 하고 사이판으로 떠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임무를 끝내고 만수와 태숙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용대를 기다린 것은 갑작스럽게 머리로 날아온 총알 한 방이었다. 결국 용대는 광천파에서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고 말았다.

용대에게 총을 쏜 범인(?)은 평소 용대의 차를 닦으며 충성을 맹세하던 부하였다. 심지어 용대를 살해할 때 쓰인 총은 용대가 형사에게 빼앗아 유광천에게 선물했던 권총이었다. 그렇게 '한방'을 노리던 용대의 꿈은 자신이 무시하던 부하에 의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놀랍게도 <게임의 법칙>의 메인 포스터에는 총에 맞고 쓰러진 용대의 얼굴이 나온다. 배급사에서 대놓고 "박중훈은 마지막에 죽는다"라고 광고를 한 셈이다.

만능 엔터테이너 임창정의 '뽀시래기' 시절
 
 약관의 임창정(오른쪽)은 <게임의 법칙>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약관의 임창정(오른쪽)은 <게임의 법칙>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주)세양필름
 
1994년 개봉작인 <게임의 법칙>에서는 박중훈, 이경영, 오연수 등 지금은 '중견'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연들 말고도 오늘날 배우와 가수로 큰 성공을 거둔 '만능 엔터테이너'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다. 바로 역할 이름도 없이 '호객꾼1'로 출연하는 임창정이 그 주인공이다.

임창정은 용대가 처음 서울로 올라와 유광천을 찾을 때와 용대가 유광천을 만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들렀을 때, 그리고 용대가 광천파에 자리를 잡은 후에 한 번씩 등장한다. 임창정의 출연분량을 합쳐봐야 2~3분 정도에 불과하고 대사도 얼마 없다. 하지만 캐릭터 이름도 없고 분량도 적은 임창정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 용대의 신분 변화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중요한 캐릭터다.

임창정은 용대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미성년자 접대부가 있다며 호객행위를 한다. 이 때만 해도 용대는 흔한 손님에 불과했다. 하지만 두 번째 등장할 때 용대는 임창정에게 외국 담배 한 보루를 뇌물로 사다 준다. 용대가 말단 조직원 임창정을 통해 광천파의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광천파의 조직원이 된 후엔 태숙을 지키지 못한 분노를 임창정을 때리면서 푼다. 그리고 이후 임창정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게임의 법칙>에서 싹수를 보였던 임창정은 1997년 영화 <비트>와 3집 앨범을 통해 배우와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2017년 직접 각색·기획·제작·주연을 맡은 영화 <게이트>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슬럼프를 겪는 듯했다. 하지만 가수로서 여전히 높은 경쟁력을 가진 임창정은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와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게임의 법칙 박중훈 이경영 오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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