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
남소연
예술 작품의 거래는 법률행위가 아닌가진중권 교수나 나나, 조영남 작가가 거래자에게 그림을 팔면서 어떤 정보를 은폐했고, 어떤 허위 정보를 제공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검찰의 기소 결정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소'란 사건을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진 교수는 이 사안이 법원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작품을 팔면서 어떤 거짓 정보를 제공해도 문제삼지 말라는 이야기일까? 그는 여기서 미술품의 거래는 다른 상품의 거래와 다르게 봐야 한다는, 모종의 특권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의 입장은 글 세 편을 쓰면서 조금씩 진화해 가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남이 그렸어도 작가가 서명만 해도 진본'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며,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무는 선택을 한다. 조영남의 작품 거래를 미학적으로 옹호하려던 행위가 오히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상품 거래'라는 법률행위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대작 정보의 모호한 특성 때문에 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고 말한다. 대작일 경우 '몇 퍼센트 원작'인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조수(혹은 대작 화가)와 협업했다'는 최소한의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망행위' 여부는 그림 가격과 무관하다진 교수는 대작 사실을 밝히든 그렇지 않든 작품의 상품성이나 가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 일간지에 실린 "어느 뉴욕 화랑주인의 말"을 증거로 든다.
"고객이 물을 경우 작가들이 조수를 썼는지 여부를 화랑에서 즉시 고지하고 있으나, 그것이 작품의 시장성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미술품 조립라인(The Art Assembly LIne)," 2011년 6월 3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어느 뉴욕 화랑주인'이 5년 전 특정 사례에 대해 밝힌 견해를 한국 미술 시장 전체에 적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검찰이 인용하는 법률상의 고지 의무를 허물기에도 역부족이다. (앞의 기사 인용문 뒤에는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가 대리작가를 쓴 존 챔벌린의 조각작품 인수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더욱이 검찰이 사기죄 구성요소를 판단할 때에는 관련 정보가 '시장성'이나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놀랄 분들이 많겠지만, 사기죄는 '재산상의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혐의자가 돈이나 재물 등을 받으면서 사람을 속였는가다. 형법 제347조를 다시 인용해 보자.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영남 작가는 돈을 받았으므로 '재물의 교부'와 '재산상의 이익' 요건은 이미 충족된 상태이고,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느냐는 것이다. 기망행위는 '적극적 기망'과 '소극적 기망'으로 나뉘는데, 앞의 것은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이고, 뒤의 것은 사실을 숨김으로써 상대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경우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무죄 판결을 받기를 바란다. 범법자 하나 늘어나는 게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명백한 범법행위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재판 과정이다조영남 문제를 미학 영역에서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미학과 법 등의 영역이 국경처럼 분리된 일면적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이 겹치고 섞이는 다층적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중요한 것은 기소 여부가 아니라 재판 과정이다. 미술작품 거래에 관한 판례가 만들어질 것이고, 이것이 한국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을 통해 섬세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조영남을 둘러싼 논쟁이 무익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미술뿐 아니라 형법, 상법, 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검찰의 기소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그렇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기까지 시민사회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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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