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손목의 상처를 내려다보는 수지(박소담 분)
영화 <수지> 화면 갈무리
영화는 사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품은 아니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버지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과 그에 대한 복수라는 단선적 에피소드일 뿐이고 이는 여성인권과 관련한 영화에서 더는 참신하지 못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자살시도를 암시하는 손목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비추며 시작한 영화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되고, 마침내 그 복수까지 나아가는 구성이 단순한 표현방식과 맞물려 울림있고 참신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권력관계를 호쾌하게 전복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가 이미 2007년에 나왔으니 남성에 대한 여성의 폭력적 복수를 그려내는 방식엔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을 테다.
물론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안이 새롭지 못하다는 점은 단편의 특성을 감안하고서라도 못내 아쉽다. 두 차례의 복수가 가져오는 통쾌함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성폭력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를 그 정당성의 측면에서라도 조금 더 구체화시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는 판타지적 설정이 메시지를 더욱 모호하게 한 탓에 그로부터 복수의 통쾌함이나 폭력에 대한 반성, 주인공의 내적 극복 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작은 가능성들에 기회를 부여하는 영화제가 많아져야아무튼 <수지>는 여성인권영화제의 경쟁부문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다른 영화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만큼 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겠다. 기자 역시 그 결말부의 호쾌한 연출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박소담이란 젊은 배우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인권영화제는 바로 이런 가능성들에 작으나마 절실한 기회를 부여하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여성인권영화제가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물며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바람직한 문제의식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에야.
다가오는 10월 2일부터 열흘 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 7월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국내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영화제의 성공은 국내외 문화콘텐츠 제작자에 기회의 장을 마련함은 물론, 대중의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데도 기여해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여성인권영화제와 같은 작은 영화제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못내 안타깝다. 크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위해선 작지만 새로운 영화들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의 작은 영화제들은 언제나 당신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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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