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강가에선 세상을 굽어보는 호연지기를 기르지 못하고, 뾰족한 첨탑 위에선 물처럼 흘러가는 현명함을 깨우칠 수 없는 법이다.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내다본다는 현자를 나는 아직 만나본 일 없다. 인간이란 부딪고 깨우치며 겪어내고 눈을 뜨는 존재가 아닌가. 모두가 앉아서 미래를 내다보는 현자일 수 있다면 인간이 처한 오늘이 결코 이 같지는 않을 테다.
선 자리에 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을 우리네 평범한 삶 가운데서도 마주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거나, 학생이었던 이가 교사가 되거나, 또 후배였던 이가 선배가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오로지 불만만 가득했던 신입사원도 팀장이 되고 나면 아랫사람을 다독이며 조직에 이로운 결과를 내는 법을 배워가게 마련이다. 상황이 바뀌고 나면 그제서야 '아, 그래서 그가 그리 했구나', '내 부모 또한 이러한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모든 자리에 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자리는 몹시 귀하고 관의 무게는 무척이나 무거워서 아무나 함부로 앉고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깜냥이 되지 않고서야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가 세상엔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