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차> 스틸 사진.
두산아트센터
이 연극의 희곡을 쓴 배해률 작가와 무대를 꾸민 윤혜숙 연출은 아니라고 말한다. 1994년이든 2014년, 또는 2019년, 심지어 1970년까지 시차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늘 사회적 참사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 이태원 등 유난히 비극적인 일이 많은 나라에서 이런 연극을 쓰려니 플롯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세 시간에 달하는 연극은 사회적 참사 말고도 퀴어, 연민, 연대, 무연고자 장례 등을 다루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관객을 빨아들인다. 이는 우수한 희곡과 연출의 힘이기도 하지만 출연진 전원이 일인이역을 맡아 고르게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덕분이다.
게이 커플 역을 맡은 이주협 배우 허지원 배우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 저절로 그 캐릭터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고 윤재가 일하는 게이빠 '사장형' 역의 정대진 배우는 '크리스마스 립싱크 댄스'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역 신지원 배우와 우미화 배우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우미화 배우는 성북동 주민들이 다니는 허름한 술집 덴뿌라에서 만났을 때는 평범한 동네 사람이었는데 <금성연인숙>, < 20세기 블루스> 등의 연극에서는 볼 때마다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커튼콜까지 했는데도 아내는 우느라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울었고 객석에도 손수건과 티슈로 눈물을 수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극장을 나서면서 이런 연극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은 게, 극 중에서 소수자 경멸로 온몸을 맞아 피떡이 되어 쓰러진 윤재를 둘러 업고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사라진 사람처럼 따뜻한 마음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의미로 뛰어난 작품인데 연극적 재미로만 따져도 절대 빠지지 않으니 꼭 보시기 바란다. 2024년 11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한다(전석 매진이라는 안내가 뜨지만 노력하면 한두 자리는 티켓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