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드레서> 공연사진
국립정동극장
이런 노먼과 선생님을 보고 필자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시골 마을의 노인 '알론조 키하나'는 스스로를 기사 '돈키호테'라고 칭하며 모험을 떠난다. 그는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자신이 그런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할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사람들의 눈에는 미치광이로 보일 뿐이다.
무대감독이 노먼에게 내린 "덧없는 희망"이라는 진단은 오래 전 돈키호테가 받은 진단이었다. 또 배우로서 공연을 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 역시 기사로서 싸움을 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돈키호테와 유사하다. 돈키호테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일지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단언했는데,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공연을 이어가겠다는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돈키호테를 닮았다.
결국 <더 드레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고민은 이야기에 입체성을 더한다. 연극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버티고 살아낸다"라는 대사는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 오늘날 관객에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
송승환의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의 주제 의식을 상기시킨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송승환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곳곳에 무대 장치가 있고, 동선이 다양하며, 동료 배우들과 움직임을 맞춰야 하는 연극을 하기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걸음 수를 세어 동선을 체크하고, 대본을 들으며 외우는 등 나름의 방법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배우의 연기 열정은 전쟁 속에서도 공연을 이어가는 <더 드레서>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와 닿게 했다.
어떻게 기억되는가
극단의 구성원들도 공연을 하기로 한 이상 선생님, 노먼과 함께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존재 가치를 찾아간다. 선생님은 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했고, 노먼은 선생님 곁을 지킨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삶의 이유를 찾은 것"이라고 말하는 노먼은 그저 16년 동안 선생님을 도우며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더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더불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도 대단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