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개소리> 포스터
KBS
이들은 거제의 마을 공동체와도 도움을 주고받는다. 순재는 순경 초원(연우)의 부탁으로 은퇴한 경찰견인 소피를 잠시 돌보게 되는데 그 덕분에 소피의 말을 알아듣게 된다. 그리고 소피의 말을 믿고 이를 확인하며 마을에서 벌어진 석연찮은 사건들의 진실을 알아간다. 순재가 소피를 돌보지만, 소피 역시 사람들을 돌보며 서로가 서로를 돌 본 셈이다.
특히 자살로 마감될 뻔한 유튜버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장면은 순재와 그 친구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 순간이었다. 작가 수정은 초원에게 대본을 써주고, 옥숙은 분장을 해주며, 채무는 조명을 밝혀 영상을 찍어준다. 이 영상을 활용해 순재와 친구들은 경찰을 도와 범인을 잡는다(2회). 펜션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거제에 온 어르신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 큰 힘이 되어 준다(4회).
특별한 사건뿐만이 아니다. 수정, 옥숙, 채무는 학원에 치여 울고 있는 동네 꼬마를 도와주고, 꼬마는 이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준다(2회). 옥숙은 신혼부부의 촬영을 지켜보다 귀걸이를 잃어버린 신부를 도와주기도 한다(3회). 잔잔한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셈이다. 서로 순환하며 돕는 모습들은 경쾌하고 따뜻했다.
<개소리>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고령화 사회'를 '위기'로 여기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 아닐까. 노년의 삶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돌봄을 받기만 하며, 사회에 짐이 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처럼 노년의 삶도 즐겁고 유머러스하며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 또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공동체를 돕는 일들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고령화 사회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안에 늙음에 대한 터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노년의 삶을 지켜봐 온 무라세 다카오는 저서 <돌봄, 동기화, 자유>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들며 약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있는 슬픔도 기쁨도 깊이 맛보고 싶습니다.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그럴 때 세계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이윽고 나는 죽겠지요. '나'라는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몸속의 에너지를 모두 불태우고 죽는 모습을 영혼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이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개소리>를 보면서 늙음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조금은 말랑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