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3월에 개봉했던 방광춘 감독의 <잠복근무>는 <몽정기>, <위대한 유산>,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에 출연하며 충무로에서 입지를 다지던 김선아의 첫 단독주연 영화였다. <잠복근무>는 191만 관객을 동원했고 김선아는 그해 6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대세스타로 발돋움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잠복근무>는 강력계 여형사 천재인이 조직폭력배 부두목의 딸을 감시하기 위해 학교로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성인이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갔으니 당연히 여러 유쾌한 일들이 발생하고 남학생과의 '썸'도 이어진다(심지어 천재인과 엮이는 남학생은 풋풋하던 시절의 공유였다). 이미 영화계에서 검증된 장르인 학원물과 형사물을 조합했으니 재미는 어느 정도 보장됐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학교로 잠입하는 설정의 영화는 <잠복근무>가 처음은 아니었다. 홍콩에서는 이미 <잠복근무>가 개봉하기 14년 전이었던 1991년에 경찰이 학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잠입하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가 개봉해 많은 관객을 웃긴 바 있다. 홍콩의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 주성치가 주연을 맡아 3편까지 제작됐던 학원 코믹 액션영화 <도학위룡>이었다.

주성치와 함께한 감독들

 <도학위룡>은 주성치의 개성 넘치는 코미디 영화 중 그나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영화다.
<도학위룡>은 주성치의 개성 넘치는 코미디 영화 중 그나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영화다.골든 하베스트

2008년에 개봉한 < 장강7호 >부터 배우보다는 감독 활동에 주력했지만 주성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최고의 코미디 배우였다. 비록 오우삼 감독이나 서극 감독,왕가위 감독처럼 색깔이 분명한 감독들과는 함께 작업한 적이 없지만 1990년대 어지간한 상업 영화 감독들과는 대부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만큼 주성치는 함께 작업하면 높은 흥행 성적이 보장되는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였기 때문이다.

이력지 감독은 주성치와 가장 손발이 잘 맞았던 감독으로 꼽힌다. TV에서 먼저 활동하던 이력지 감독은 드라마 <개세도협>을 통해 주성치를 만났고 1993년 <당백호점추향>을 연출하면서 주성치의 영화를 처음 만들었다. 이후 이력지 감독은 <파괴지왕>과 <럭키 가이>,<희극지왕> 등을 연출했고 주성치의 연출 데뷔작 < 007북경특급 >과 주성치 코미디의 정점으로 꼽히는 <식신>을 공동 연출했다.

유진위 감독은 1990년 <도성>에서 연출과 제작, 원안, 조연까지 1인 4역을 맡으며 주성치를 홍콩영화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인물이다. 1991년과 1992년엔 <신정무문> 시리즈의 각본을 쓰기도 했던 유진위 감독은 1995년 <서유기-월광보합>과 <서유기-선리기연>을, 1996년 <홍콩 레옹>을 연출했다. 특히 주성치 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서유기> 시리즈는 지난 2010년 국내에서 재개봉 되기도 했다.

1981년에 감독으로 데뷔해 제작과 배우 활동을 포함, 200편이 넘는 다작을 했던 왕정 감독 역시 주성치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왕정 감독과 주성치는 국내에서 <지존무상3 >라는 제목으로 수입됐던 <도협>을 시작으로 <정고전가>, < 도협2 >, < 녹정기> 시리즈, <구품지마관>에서 감독과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왕정 감독은 지난 2014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성치의 프로의식을 극찬하기도 했다.

<식신>에서 주성치 밑에서 요리를 배우다가 배신을 하고 빌런으로 돌아서는 불통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곡덕소도 감독과 배우, 각본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성치는 <식신>을 비롯해 <산사초>, <럭키 가이> 등 자신의 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했던 곡덕소의 연출 데뷔작 <성룡의 빅타임>에서 카메오로 출연했고 훗날 < 장강7호 >에서는 감독과 주연(이상 주성치), 제작과 각본(이상 곡덕소)으로 재회했다.

코믹과 액션, 로맨스의 절묘한 조화

 <도학위룡>은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학교로 잠입한 형사물'의 원조격인 영화다.
<도학위룡>은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학교로 잠입한 형사물'의 원조격인 영화다.골든 하베스트

<도학위룡>은 <이연걸의 정무문>, <성룡의 썬더볼트>, <메달리온> 등을 연출했던 진가상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다. <도학위룡>을 통해 주성치와 인연을 맺은 진가상 감독은 1992년 < 도학위룡2 >, 1993년 <무장원 소걸아>를 차례로 연출했다. 이력지 감독처럼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을 맺은 사이는 아니지만 초창기 주성치가 코믹 액션배우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감독이다.

<도학위룡>은 승진 시험에서 탈락한 경찰 주성성(주성치 분)이 서장의 지시로 잃어버린 총을 되찾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학교로 잠입 수사를 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공부가 싫어 경찰이 된 주성성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혼나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예쁘고 상냥한 상담교사 하선생(장민 분)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우울하던 주성성의 학교생활에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도학위룡>은 파릇파릇하고 날렵한 주성치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 및 사건들, 그리고 가짜 학생과 여선생의 로맨스 등 온갖 재미요소가 가득한 영화다. 호불호가 매우 강한 주성치 영화 특유의 개그 포인트가 그나마 적기 때문에 주성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이 즐기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다(다만 국내에서는 서울 관객 2만 4000명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반까지 노골적인 학원 코믹물로 진행되던 <도학위룡>은 영화 후반 학교 일진들이 폭력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코믹 액션으로 장르가 한 차례 변주된다. 특히 여기서 사고뭉치 가짜 학생이 아닌 뛰어난 강력계 형사 주성성의 액션연기를 볼 수 있는데 주성치는 이 장면에서 '이소룡 키드'다운 출중한 액션연기를 선보인다(물론 주성치에게 성룡이나 이연걸 수준의 액션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주성치는 <도학위룡>이 1991년 홍콩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자 이듬해 <도학위룡2:첩혈위룡>에도 출연했다. < 도학위룡2 >에는 주인이라는 신인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주인은 1995년 <서유기-선리기연>에서 자하 선녀 역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왕정 감독이 연출하고 고 매염방이 합류한 <도학위룡3-용과계년>은 학교 컨셉을 버리고 당시 인기 있던 영화 <원초적 본능>을 패러디했다.

주성치와 12편을 함께 했던 뮤즈

 주성치(가운데)와 고 오맹달(왼쪽),장민은 <도학위룡>을 포함해 무려 10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주성치(가운데)와 고 오맹달(왼쪽),장민은 <도학위룡>을 포함해 무려 10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골든 하베스트

1990년대 초·중반 주성치와 장민은 서로에게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다. 실제로 장민은 1988년 <소자병법>을 시작으로 <도성>, < 도협1,2 >, < 신정무문1,2 >, < 녹정기1,2 >, <무장원 소걸아>, <구품지마관> 등 주성치와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도학위룡>에서는 주성성이 첫눈에 반하는 상담 선생님 역을 맡았는데 영화 속에서 주성성은 하선생 앞에서 성인용품으로 풍선을 부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장민을 능가하는 주성치의 '명콤비' 고 오맹달은 <도학위룡>에서 주성성보다 먼저 학교에 잠입한 동료경찰 달숙을 연기했다. 여러 영화에서 주로 주성치의 삼촌이나 아버지를 연기했던 것과 달리 <도학위룡>에서는 주성치보다 낮은 계급의 경찰을 연기했다(물론 학교에서는 달숙이 주성성의 아버지라는 설정이다). 달숙은 정의를 수호하기보다는 본인 한 몸 건사하기 바쁜 '생존형 경찰'로 나온다.

주성성이 잠입한 학교에서 주성성의 짝이 된 학생 황소구(황일산 분)는 왜소한 체격에 소심한 성격으로 언제나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전형적인 교실의 약자다. 이 때 정의감 넘치는 주성성은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진 무리들을 혼내주면서 황소구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하지만 황소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성성의 이름을 팔아 학생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비열한 2인자'로 변모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도학위룡 진가상감독 주성치 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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