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은 <명량>의 이순신 장군 역할을 통해 뒤늦게 '천만 배우'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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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광장에 가면 이 나라의 역사를 빛낸 최고의 위인 2명의 대형 동상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 중 하나로 꼽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동상이다. 세종대왕은 만 원권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자 이미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역대 최고의 위인으로 꼽힌다. 그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에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세종대왕 동상에 버금가는 위인으로 꼽히며 광화문 광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16세기 말 조선의 명장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듯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용맹하게 우뚝 서 있다.
1970년대까지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2000년대 이후엔 청년 시절 이순신이 등장했던 <천군> 정도를 제외하면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던 2014년 <최종병기, 활>을 만들었던 김한민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최민식과 의기투합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뺨치는 해상 전투장면
<파이란>,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에서 열연을 펼친 최민식은 송강호, 설경구, 황정민, 이병헌 등과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우로 꼽힌다. 다른 배우들이 적게는 한 편, 많게는 3편 이상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최민식은 최고의 배우로 인정 받으면서도 2013년까지 커리어에 천만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그렇게 흥행성적에서 2%의 아쉬움이 있었던 최민식은 <명량>을 통해 무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단숨에 한국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배우로 올라섰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최민식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역을 소화하기 위해 그야말로 연기혼을 불사르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실제로 최민식의 열연이 없었다면 신드롬에 가까웠던 <명량>의 엄청난 흥행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명량>은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과 달리 평단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해전의 웅장함에 집중하느라 캐릭터들의 특징과 서사가 빈약해졌다는 혹평을 내렸다. 특히 이정현이 연기했던 정씨 여인이 치마를 흔드는 장면은 해전의 집중을 방해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작위적인 억지신파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인물들에 대한 분배 역시 썩 적절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명량>이 보여준 실감나면서도 몰입감 높은 해전의 완성도는 할리우드의 해전영화들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관객들의 애국심과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최민식의 명연기와 김한민 감독의 적절한 연출 역시 <명량>의 장점이었다. <명량>은 흥행뿐 아니라 대종상 작품상과 청룡영화상 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대상(최민식)을 휩쓸면서 2014년을 지배했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이 공전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순신 3부작의 제작 계획을 밝혔고 긴 준비 끝에 2022년 <한산:용의 출현>과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를 선보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인 2020년과 2021년에 촬영한 <한산>과 <노량>은 각각 박해일과 김윤석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다만 <노량>은 457만 관객을 동원하고도 700만에 달하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