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누자바르>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누자바르>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득양
"내가 내 아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사람인 누자바르는 한국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을 파고든 죄책감 하나가 남은 생의 시간을 좀먹듯 그를 괴롭힌다. 자신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에 대한 슬픔과 그 일로 인해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다른 가족들에 대한 죄업 때문이다. 어느 날 그런 그의 앞에 부두 작업자들로부터 쫓기던 한 소년(김성현 분)을 만나게 된다. 정박된 배에서 고철을 뜯어 훔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그를 만나게 되던 날, 누자바르는 오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 하나를 해내고자 한다.
영화 <누자바르>는 어린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카자흐스탄인 누자바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득양은 TV 드라마는 물론, 다양한 웹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 김성현의 또 다른 활동명으로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작품 전체의 미장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의 분위기는 불안한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면서도 서로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는 구도자적 이미지를 잘 이끌어내고 있다.
이야기는 소년을 만난 누자바르가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면서부터 나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루동안 소년이 고철을 줍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 밤이 되면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그가 부두의 작업반장으로부터 훔친 큰돈도 함께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동행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각자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이다.
다만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구원의 의미도 서로의 생을 건져 올린다는 표면적인 의미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누자바르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몇몇 지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죽음을 결심한 인물이다. 하지만 오래 죽지 못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어, 소년과의 거래를 통해 그의 손을 빌리고자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그의 고철을 온몸에 칭칭 감아 그 무게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멀리 두고 온 아내와 다른 가족들의 잔상으로부터도 멀어지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구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단어들은 잠깐 비틀어진 상태의 의미가 의미를 배반하고 훼손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의 구도(求道)적 의미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주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이유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홀로 남겨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아들의 곁으로 향하지 못한 한 남자를 편안히 보내주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구속된 거래는 아니었으나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 완성되는 것이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누자바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자리는 꽤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 오프닝에 놓여있던 내래이션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떤 잘못은 누군가가 전하는 속죄의 말로도 씻을 수 없고, 과거의 내가 만들어왔던 어떤 선행으로도 감싸낼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원망하지 않아서 내가 원망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어쩌면 누자바르를 가장 힘겹게 만들지 않았을까. 소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뱉는 카자흐스탄어의 말이 오래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