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금요일 밤의 연인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금요일 밤의 연인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금요일 밤의 연인>
한국 / 2024 / 극영화
감독 : 박용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 다음 주 금요일에 또 봐요."

구두가 불편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신발을 내어준 남자가 있다. 과거에 여자는 결혼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고 그로 인해 상처도 컸다. 남자는 그런 그녀를 많이 좋아한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도 남자는 여자보다 더 크게 웃고 있다. 마음이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다.

그런 남자의 고백이 있었다. 그의 사랑 앞에서 여자는 아침이 올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우진(박봉준 분)과 연희(이수정 분)는 금요일마다 만나는 연인이다. 연희가 우진에게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하던 금요일 밤, 두 사람은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 연인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부족하지만, 코 끝을 간지럽히는 감정 사이의 남녀는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아직 사랑은 아니다. 프레임 속의 분위기는 연희가 먼저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향하는 순간 돌변한다. 부끄러우니 방에서 나오지 말라던 그녀의 말도 차갑게 식는다. 그녀가 결혼을 생각했다던 전 남자친구 진영(정이헌 분)이 욕조 속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알 수 없는 노끈에 목이 묶인 채로, 두 팔이 축 늘어진 남자가 그녀의 집 안에 있다. 숨도 쉬지 않는다.

영화 <금요일 밤의 연인들>은 처음의 기대감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만나는 이들에게 기대되는 사랑은 간지러운 종류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타이틀을 시작으로 시놉시스, 스틸컷까지 영화의 모든 정보가 애틋한 사랑을 가리킨다. 단 하나, 장르가 표기된 지점에 '로맨스'와 더불어 '범죄/누아르'가 놓여 있다는 점만 빼면.

점차 변해가던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것은 연희의 요구 하나다. 우진에게 진영의 시체를 보여준 그녀는 무슨 일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을 꼭 한번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길 강요하는 이 장면은 이제 다시는 지난 금요일의 밤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된다.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그 관계의 내일을 움켜쥐고 있는 이의 요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나이나 성별과 같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단계를 더해가며 조금씩 더 잔혹한 요구를 해오는 연희와 거절하지 못하는 우진의 관계를 통해 영화는 이 지점을 명확히 그려낸다.

하지만 우진의 희망과는 다르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진영의 혼령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필요한 우진의 육신뿐이다. 자신의 사랑이 향하지 않는 우진의 혼이 추후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와 이미 망가져버린 진영의 육체는 지금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의 장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던 두 남녀의 모습은 이제 악몽이 된다. 연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 영화는 이 지점을 소리를 제거한 흑백의 장면으로 그려내는데, 장르적 표현을 극대화하는 미장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 한 사람에게는 끝나버린 사랑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랑을 떠나보내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현실 속의 우리가 실제로 그러하듯이, 이미 싹트기 시작한 감정을 홀로 정리하는 일은 꽤 잔혹한 동화가 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곁가지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닌 자리에 놓인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려지는 연희의 포옹은 이를 더욱 선명하고 잔혹하게 확인시키는 장면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구하는 쪽에서 먼저 행동하게 된다. 영화의 처음에서도 우진이 먼저 연희를 향해 달려가 껴안았다. 이제 사랑에 대한 영화의 은유가 역설적으로 그 사랑을 더 강하고 뜨겁게 투영하고 있음을 안다. 나의 생을 받쳐서라도,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당신을 여기에 다시 불러서라도. 어떻게라도 이루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펀치 코인시던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펀치 코인시던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펀치 코인시던스>
중국 / 2023 / 극영화
감독 : 챈 샤오멩

"너도 우연의 의미를 믿는다는 거야?"

우연을 좋아하고 우연을 수집하길 즐기는 여자가 있다. 취미는 사진. 그녀는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지루하게 여겨지는 매일매일이 덕분에 신비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어느 날, 여자는 자신의 사진 곳곳에서 이름 모를 한 남자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같은 차림으로 사진 속 멀리, 작은 존재감으로 여자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남자. 하지만 다음 촬영 때도, 그다음 촬영 때도 여자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다.

한편, 뉴스에서는 뇌 컴퓨터를 만드는 '마인드링크'라는 회사의 제품이 이용자의 화상 문제로 리콜이 실시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뇌 컴퓨터는 머리에 작은 기기를 넣어 컴퓨터를 자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기다. 여자도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지만 아직은 괜찮다.

피해자의 특이점은 왼손에 경련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에서 연기도 나고 아프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의 대응이라고는 고작 떨리는 왼손을 감출 수 있도록 압박복을 제공하는 일뿐이다. 

영화 <펀치 코인시던스>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그 대상을 자신의 연인이라고 알아보게 되는 과정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자연법칙이나 과학적 사고에서는 벗어난 상상. 자연스럽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 마법 같은 시간의 완성이 우리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챈 샤오멩 감독이 연인의 만남을 온전히 우연에 기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극 중 여자는 우연의 의미를 믿고 있지만, 양쪽 모두의 접근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완벽한 우연은 성립되지 않는다. 남자에게는 모종의 거래가 있다.

남자를 찾아다니던 여자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 꼬리를 잡는다. 남자는 왼손을 심하게 떨고 있고, 외투 속에는 연한 갈색빛이 도는 압박복을 입고 있다. 조금 전 뉴스 속의 그 피해자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연인 같은 모습이다.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중을 알아챌 정도다. 특히 남자에게 이 만남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멀리서 여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 자신의 떨리는 왼손과 거래를 한 것뿐이었다. 왼손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그를 떠나기로 했다. 이후에는 모두 왼손의 뜻이었다. 남자는 그가 알려주는 시간과 장소, 타이밍에 맞춰 그저 움직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여자의 사진 속에 담긴 그의 모습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영화는 후반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두 사람의 만남에 뇌 컴퓨터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남자가 약속했던 왼손의 정체와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사랑 앞에는 만남 앞에 우연이라고 믿는 사람과 알 수 없는 존재의 개입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 두 사람이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짝을 알아보는 일이 의지나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설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많은 연인들이 자기 연애의 진실성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과 별개로 영화가 나아가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SF와 로맨스 사이의 두 지점을 잇는 연결고리가 다소 헐겁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양자 컴퓨터와 제3의 생명체라는 설정 또한 장르적 요소를 채워넣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으로만 여겨진다. 아직 피해자가 아닌 인물이 피해자를 아무런 저항 없이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과정이 계획을 모두 완성해내지 못한 느낌. 이번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될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금요일밤의연인 펀치코인시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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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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