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말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도 높고 그만큼 뛰어난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많이 배출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명작들을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최근 열풍을 일으킨 <너의 이름은>과 <스즈메의 문단속> 등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대표적이다.

일본 극장가의 역대 흥행순위를 보면 애니메이션의 위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역대 일본영화 흥행순위 상위 10편 중에서 애니메이션은 무려 9편을 차지하고 있다(흥행 통신사 기준). 일본인들의 '애니메이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지난 2020년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5억300만 달러의 성적으로 세계흥행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03년에 개봉했던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는 173억5000만엔의 성적으로 전체 7위, 실사영화 1위에 올라있다. 일본 실사영화 흥행순위엔 코미디와 시대극, 재난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지난 2004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멜로영화가 85억 엔의 수익으로 전체 74위, 실사영화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바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국내에서도 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국내에서도 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 (주)동아수출공사

 
후배들 롤모델이 된 여성 만능 엔터테이너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는 가수와 연기자 생활을 병행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두 가지 분야를 슬기롭게 양분하기는 쉽지 않은데 일본의 배우 겸 가수 시바사키 코우는 배우로도 성공했고 가수로서도 굵은 중저음의 음색과 뛰어난 감정처리를 겸비한 매력적인 여성 보컬리스트로 꼽힌다. 여기에 작사능력도 뛰어나 본인의 앨범에 실린 다수의 노래가사를 직접 쓸 정도로 팔방미인이다.

1998년 배우로 먼저 데뷔한 시바사키는 일본에서는 2000년 12월, 한국에서는 2002년 4월에 개봉한 영화 <배틀로얄>에서 소마 미츠코를 연기하면서 주목 받았다. 영화 속에서 소마 미츠코는 긴 생머리에 아이돌처럼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는 여학생이지만 현실은 온갖 범죄를 일삼는 불량그룹의 리더다. 시바사키는 2001년에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를 통해 일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2년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과 <굿 럭>,영화 <착신아리>에 출연하며 명성을 높이던 시바사키는 2004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GO>를 연출했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과 재회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세트 테이프를 보고 고향으로 떠난 사쿠(오오사와 타카오 분)의 약혼자 리츠코를 연기한 시바사키는 연기는 물론이고 OST에도 참여하며 영화의 흥행에 기여했다. 

2004년 드라마 <오렌지 데이즈>에서 청각장애인 연기에 도전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던 시바사키는 2006년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주변으로부터 '못난이'로 불리는 요시다 카오리 역을 맡았다. 2008년에는 한국에서도 2012년에 리메이크됐던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우츠미 카오루를 연기하면서 주제가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나 더빙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시바사키는 2021년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 드 빌의 더빙을 했다. 작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키리코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다. 배우는 물론 가수로도 오랜 기간 큰 구설수 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시바시카는 토다 에리카와 카와시마 우미카, 야마모토 사야카 등 많은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는 선배가 됐다.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9위 영화
 
 일본 내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 실사영화는 단 8편에 불과하다.

일본 내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 실사영화는 단 8편에 불과하다. ⓒ (주)동아수출공사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2001년 카타야마 쿄이치 작가가 발간한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원작소설은 발간 초기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훗날 영화버전에서 리츠코를 연기하는 시바사키 코우가 "울면서 단 번에 읽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라는 감상평이 화제가 되면서 2003년에 100만부 돌파, 영화 개봉 후에는 300만부를 돌파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실 평범한 남학생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여학생이 사랑에 빠지고 여학생이 불치병에 걸린다는 영화의 설정은 이미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역시 원작의 내용을 지나치게 각색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보다는 원작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한다는 뚝심을 고수했다. 그리고 이는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순위 9위라는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리츠코는 사쿠의 현재 약혼자로 사쿠가 아키와의 추억을 쫓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리츠코는 아키가 병원에 입원한 후 병원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어린 소녀였고 아키가 사쿠에게 들려주기 위해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학교 신발장으로 배달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진다. 리츠코는 세월이 흘러 사쿠와 함께 아키가 생전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세상의 중심(호주의 울루루)'으로 함께 떠난다.

소설과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2004년 여름 일본에서는 곧바로 드라마 버전이 제작돼 TBS를 통해 방송됐다. 야마다 타카유키와 아야세 하루카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05년 한국에서 차태현, 송혜교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영화 <파랑주의보>는 전국 32만 관객으로 흥행에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삭발투혼' 후 일본의 국민 여동생 등극
 
 아키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통해 단숨에 일본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등극했다.

아키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통해 단숨에 일본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등극했다. ⓒ (주)동아수출공사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오오사와 타카오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가출(?)한 약혼자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첫사랑과의 추억을 쫓는 34세의 사쿠 역을 맡았다. 리츠코로부터 아키의 마지막 테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쿠는 자신과 아키의 웨딩사진을 찍어줬던 시게 아저씨(야마자키 츠토무 분)를 찾아가 대성통곡을 하고 리츠코와 함께 아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호주로 떠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현 시점인 2000년대와 사쿠와 아키가 고등학생이었던 1986년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아무래도 과거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쿠의 고교시절을 연기한 모리야마 미라이가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고교생 사쿠 역을 잘 소화한 모리야마는 2013년과 2021년 키네마준보 베스트텐 시상식에서 두 번이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일본의 명작만화 <터치>의 실사영화에서 히로인 아사쿠라 미나미를 연기했던 나가사와 마사미는 <프로포즈 대작전>,<모태키: 모태솔로 탈출기>,<마닷마을 다이어리>,<마더> 등에 출연한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스타 중 한 명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는 히로세 아키 역을 맡아 10대의 어린 나이에 삭발을 하는 대범한 연기를 선보인 나가사와는 일본의 9개 영화제에서 신인 및 조연상을 휩쓸고 일본의 '국민여동생'에 등극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세상의중심에서사랑을외치다 유키사다이사오감독 시바사키코우 나가사와마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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