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재킹> 스틸컷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보는 영화에서 언젠가 경험한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을 때면 조금은 혼란스러워진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 이전에 마음속에 어떤 희미한 장벽이 세워지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 문제를 오롯이 창작자의 편협한 시각과 태도로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유사한 소재를 이야기할 때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특히 현장에서) 관객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좁을 수 있고, 온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조금도 친숙하지 않은 것이 일순간 가깝게 여겨지는 이 감정은 그래서 위험하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이 작품을 이전에 존재한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가 선택했던 방식을 완전히 깨고 나왔다. 그는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가해자의 삶을 프레임 속에 담기로 한다. 보여주지 않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도 성공적이었다. 담장 너머의 이야기를 통해 내부에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냈다. 이제 그 방식을 알고 난 이후에는 그것이 '담 하나만 넘으면 된다.'는 아주 작고 쉬운 일임을 깨닫게 될 뿐이다.
과거에는 유사한 소재와 내러티브, 심지어는 장면을 가진 작품에 대해 한국 영화의 무엇까지 들먹여가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곤 했지만 요즘에는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힘주어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기시감 하나로 한 작품을 평가하기엔 섣부른 부분이 있다. 설령 그것으로 그치는 작품일지라도, 결과물과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작은 조각으로나마 어딘가에는 남겨져 있으리라 믿고 싶은 것이다.
02.
"우리 다 같이 살아서 너처럼 억울한 사람은 만들지 말아야지."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에 일어난 여객기 납치 사건인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속초공항 발 김포국제공항 행 대한항공 소속의 여객기가 하이재킹 당해 납북될 뻔했으나 이강흔 기장과 전명세 조종사의 노력으로 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던 사건. 영화는 항공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서스펜스를 구축하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인물들의 강인한 모습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지점에서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관객들에게 선보인 바 있는 동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가깝게는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2022)이 있다. 테러와 용의자, 비행 상황에서의 대립과 위기, 긍정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점이 오버랩된다. 이전에 존재했던 할리우드의 항공 테러 작품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르적 반복에 의해 형성되는 '컨벤션(Convention)'으로도 여겨질 수 있지만 관객들의 기시감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김성한 감독이 선택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실화를 기반으로 재현에 가까운 고증에 기대어 시대와 현장을 가져다 놓는 것이 첫 번째다. 그 중심에는 여객기 조종사 태인(하정우 분)이 있다. 실제 인물인 전명세 조종사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상황이 제시하는 여러 딜레마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최우선 가치를 지켜내고자 한다. 테러범인 용대(여진구 분)와도 직접적으로 대립하며 당시의 장면을 완성해 낸다.
두 번째는 딜레마의 문제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영화 <하이재킹>은 인물의 딜레마로 시작해서 딜레마로 끝나는 작품이다. 납북의 위험에 처한 비행기와 그런 상황을 만드는 인물 용대는 그 딜레마를 제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심인물이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내는가 하는 것. 이 선택의 과정은 실재했던 사건과 숭고한 희생을 선택했던 실존 인물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중요한 요소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