뢰(賴)라는 글자가 있다. 흔한 용례로는 '신뢰'에서 믿을 신(信)자 뒤에 붙는 뢰가 바로 이 자다. '의뢰할 뢰'라는 이 글자는 오늘날 그 쓰임이 몇 되지 않는데, 신뢰와 함께 무엇을 맡길 때 쓰는 '의뢰하다'는 말이 이 글자를 쓰는 대표적 사례다.
문자를 파자해보면 剌(어그러질 랄)자와 貝(조개 패)자가 합쳐진 모습으로, 과거 화폐로 이용했던 조개를 본래 뜻과 달리 쓰는 무절제한 광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뇌물과 수뢰죄에 쓰이는 뇌물 뇌(賂)자는 의뢰할 뢰와 별도의 글자이고, 의뢰할 뢰가 저를 이룬 두 자와 반대되는 개념, 즉 신뢰며 의뢰를 뜻한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흥미롭다. 신뢰와 의뢰 모두 믿음과 원칙, 즉 질서를 바탕으로 한 개념이 아닌가 말이다.
의뢰할 뢰자가 인상적으로 쓰이는 용례가 하나 더 있다. 무뢰한, 문자 그대로 '뢰'가 없는 놈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선 무뢰한에 대하여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적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뢰라는 글자가 긍정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가 있다. 원칙 없는 인간, 예의도 염치도 모르는 못된 자가 바로 무뢰한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