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스 그레이드>의 포스터

영화 <에이스 그레이드>의 포스터 ⓒ 네이버영화

 
"내가 널 보듯이 너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장담컨대 너도 두렵지 않을 거야."
- <에이스 그레이드> 중
 

어른이 되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8학년(13~14살)에서 9학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인공 케일라(엘리 피셔). 밖에서는 조용하고 집에서는 까칠한 케일라는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중이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유튜브 영상 제작하기. 나답게 살기, 자신감을 갖는 법 같은 주제로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지만 조회수는 늘 한자리에 그친다.

한편, 이른 나이에 아내를 잃고 홀로 케일라를 키워낸 아빠 마크(조쉬 해밀턴). 그는 틈만 나면 딸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결과는 10전 10패. 내 딸이지만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매일 방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케일라가 걱정인 아빠는 딸에게 "밖으로 나가 보라"라고 권한다. 

어느 날 케일라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 참가한다. 하지만 다소 유치한 생일 선물을 준비해 친구들한테 망신만 당하고, 설상가상 케일라가 짝사랑 중인 에이든(루크 프랠)은 알고 보니 변태? 그녀는 그런 에이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험한 거짓말을 하는데... 과연 케일라는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까?

사춘기를 보낸 모든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혹은 사춘기의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영화 <에이스 그레이드(8학년)>. 가벼운 미국 하이틴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불안에 대해 얘기하려는 묵직한 시도가 담긴 작품이다.

감독은 미국의 유튜버이자 코미디언인 보 번햄(Bo Burham. 1990~).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자신이 겪었던 불안감과 공황 발작에 대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불안이 나를 겁에 질린 13세처럼 느끼게 했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성인이 아닌 8학년 청소년으로 선택했다고. 동시에 본인의 모습이 지나치게 투영되는 것을 염려해 소년이 아닌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특히 번햄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이다. 그는 미국의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셜 미디어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발판 삼아 인터넷이 청소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

감독이 말하는 이 불안감은 나에게도 무관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각종 SNS를 섭렵하며 사진을 찍고 열심히 글을 쓰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시물 당 몇 개의 댓글이 달리고, 몇 번의 좋아요가 찍히는지 확인하느라 틈만 나면 핸드폰을 열게 되는 것은 기본. 나중에는 핸드폰이 가까이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일종의 금단 증상까지 생겨났었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모든 SNS 계정을 삭제했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 현재는 일체의 SNS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활발하게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던 때보다 자유롭고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느낀다. 

영화는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들을 다룬 선구적인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화제를 모았다. 영화가 개봉되던 당시인 2018년의 미국의 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45%의 10대들이 거의 항상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중 24%는 그 영향을 "대부분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45%는 "부정적도 긍정적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이 인터넷 접속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유행에 뒤쳐질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미국의 10대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딸을 지키는 아빠의 마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 imdb.com


영화 속 케일라는 이러한 10대들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현실의 케일라는 소극적인 성격 탓에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지만, 온라인에 접속해 있으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때문에 케일라 역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케일라를 둘러싸고 있는 온라인 세상은 날마다 변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빠 마크이다. 감독은 아빠와 딸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있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변함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의 존재다.

까칠한 딸의 문전박대에도 아랑곳없이, 매일 밤 딸의 방문을 노크하며 `사랑한다`고 인사하는 다정한 아빠의 존재는 케일라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때문에 아빠의 간섭이 귀찮으면서도 케일라 역시 늘 아빠의 안색을 살핀다.

영화의 말미에는 영화 전체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 싶었을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주요 소품이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녀에게`라고 적힌 타임캡슐을 케일라가 불태워 버리는 장면이다.  

무엇을 태우냐는 아빠의 질문에 "꿈과 희망"이라고 대답한 케일라. 그리고는 아빠에게 나같은 딸을 가져서 슬프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딸의 질문에 대한 아빠 마크의 대답을 듣고 나면 누구나 가슴 한 편이 먹먹해지리라.

"케일라, 그렇지 않아, 네가 틀렸어. 네가 자라서 너 같은 딸을 낳게 된다면 너는 너무 행복할 거야. (중략) 넌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 내가 널 보듯이 너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지금껏 변함없었던 네 진짜 모습을 본다면 장담컨대 너도 두렵지 않을 거야."
 
 케일라를 향한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 마크

케일라를 향한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 마크 ⓒ imdb.com

 
아빠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들은 케일라는 아빠의 품에 와락 안겨든다. 이 밤의 대화를 기점으로 케일라의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변했다. 불에 타 재가 된 줄 알았던 꿈과 희망이 그녀의 마음속에 다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짜 내 편이 그녀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묘사한 <에이스 그레이드>. 2018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올해 본 가장 감동적인 영화로 골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2019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 영화 <기생충>이 수상(2020년)한 바 있는 미국작가조합(WGA)의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에는 데이트 폭력이나 유사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해 관객에 따라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미국에서 R등급(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요망)을 받은 것은 해당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번햄 감독은 "R등급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다. 아이들의 생활에 R등급에 해당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등급을 낮추기 위해 영화를 재편집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분께 추천해요!

#SNS에 진심인 편 #우리 집에도 사춘기인 사람 있는데...? #미국 하이틴 영화 챙겨보는 편
덧붙이는 글 <에이스 그레이드>는 로튼 토마토 '최고의 영화 100선'에서 95위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에이스그레이드 최고의영화100선 사춘기소녀의성장물 진짜내편은 한명이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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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와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프리랜서 번역가. 동경 거주 중. Matthew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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