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그 규모 때문에라도 큰 기대를 안 하게 된다. 비좁은 무대 위에 적은 인원의 배우들이 나와서 사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들어가겠지, 하는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일 을지로 철학극장에서 본 연극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은 그런 선입견을 통쾌하게 부수어 버리는 수작(秀作)이었다.
일단 어떻게 이런 배우들을 모아 놓았나 싶을 정도로 아는 얼굴들이 많았고 연기 또한 고르게 훌륭했다. 아내와 나는 마이코 역을 맡은 심은우 배우의 팬이라 갔지만 극의 중심이 되는 준짱 역의 권주영, 기미코 역의 박수진, 그리고 그들의 부모 역할을 맡은 박승현, 황규찬, 고은빈 들도 모두 다른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정상급 배우들이었다.
일본 희곡을 가져온 이 작품은 방금 그림책 작가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기미코(박수진)와 그의 후배 도모(박세인)가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2018년의 일이고 극은 곧 1991년 기미코와 준이 어렸을 때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