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민 기자
이영광
- 그중에서도 울산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방소멸은 울산 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만약 다른 도시를 타깃으로 이야기 했다면 저는 흥미가 떨어졌을 것 같아요. 울산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거든요. 울산은 모두가 알다시피 어떤 면에서는 부자 도시입니다. 여기는 (시민들이) 잘 사는 도시고, 특히 이 울산에 있는 기업들이 아주 잘 나갑니다. 요즘 현대차는 세계 3등 하는 자동차 회사가 됐어요. 그 회사의 허브가 울산에 있습니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우리 조선산업이 호황을 맞아서 1분기에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기준으로 1등을 했어요. 이렇게 잘 나가고 업황이 좋은데 울산은 인구가 줄어드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상징적이죠. 울산에 터전을 두고 있는 산업이 매우 잘 영위되고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낙수 효과가 없죠. 여기에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문제가 있고요.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었어요. 울산 등 지역이 어려운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구가 계속해서 수도권으로 가고 있는 사실이 출생률에도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자정 야근을 마치고 뛰어가는 노동자들 모습으로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첫 장면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큐멘터리는 영상이기 때문에 흥미로워야 해요. 보는 사람을 잡아끌어야 하는데 그게 주제와도 연결되어야 하죠. 유튜브에서 현대차 공장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는 영상을 봤는데, 방송 기자로서 흥미로웠어요. 또한 이 이야기에 가장 중요한 공간이 현대차인데, 현대차 공장이 가장 역동적으로 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면이어서 무조건 이 장면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현제씨가 '울산은 신분이 나뉘어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신분을 말하는 것인가요? 회사 밖에서도 신분이 나뉜다는 말인가요?
"현대차에 공식적으로 물어보면 '우리는 거의 다 직접 고용했다'고 말해요. 법원도 판결을 계속 그렇게 내리고 있어요. 법원이 판결을 통해 선을 그어주면 현대차는 그에 따라서 정규직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뜻밖이었던 게 '2차 하청'이라고 부르는, 청소직, 식당직 등에 대해서는 하청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건 아닌데요. 우린 다 직고용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까지 직고용은 할 수 없잖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다 신분제 아닐까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다 나뉘어 있죠. 울산이라는 공간의 특징은 어떤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내재화하고, 무엇을 내재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결정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이 없었을 때는 다 같은 기업에 다니고 대부분의 아빠들이 같은 작업복을 입고 다니니까 다 똑같았죠. 어느 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동네에서도 그게 곧 본인의 신분이 되는 겁니다. 서울에선 모두가 다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신분제라고 느끼기 어렵다면, 여기선 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신분처럼 느껴지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공간이죠."
현대자동차가 성장해도, 울산에는 청년이 없다
▲서영민 기자이영광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울산 상황에 대해 '기업과 지역이 아무 상관 없어졌다'며 '공중 부양'이라고 했어요.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낙수 효과가 없어진다는 의미예요. 기업이 잘 되면 지역도 잘 된다는 건 그동안 울산에 통용되던 얘기였어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 게 이제 끊어진 겁니다. 비정규직은 돈을 적게 받고 지역 사회에 떨어지는 것이 적죠. 이 비정규직을 현대중공업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로 씁니다. 7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 있고 이걸 점점 늘리려고 해요."
- 외국인 노동자도 월급을 받으면 지역에서 소비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엄격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한다면 한국인 노동자의 가족들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한 명이 벌어서 울산은 3~4명이 먹고사는 구조였죠. 반면 외국인 이주 노동자는 받은 돈의 절대적인 비중을 본국으로 보낼 겁니다. 돈을 벌기 위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이가 있죠.
낙수 효과가 떨어진 게 비정규직이 많아진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다 수도권으로 올라간 영향도 있습니다. 현대차의 남양 공장은 현대차의 심장 같은 곳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R&D 센터고, 모든 혁신이 거기서 일어나죠. 울산에도 비슷한 시설, 설비가 있었지만 통합하면서 다 남양으로 갔어요. 현대중공업도 배를 만드는 공장은 원래 R&D 기능 연구개발 기능과 떨어트려서 운영하기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IT 기술 때문에 가능해졌죠. 연구 개발 기능을 끝없이 수도권으로 가져가는 이유는 생존 문제이기도 해요. 서울에 있는 청년들이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고 울산에 내려가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 울산 출신 학생들 중에 남학생들은 그래도 지역에 남으려고 하던데.
"울산대학생들 인터뷰를 보면 남자들은 (울산에) 남겠다고 하죠. 울산대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종합대학이지만 현대중공업이 만든 대학이고 공대는 취업이 꽤 잘되겠죠. 공대엔 남자 비율이 높고요. 산업 도시가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의 울산은 가장이 일하고 여자들은 살림하는 곳이었죠. 울산은 전국에서 여자 고용률이 꼴등입니다."
- 한국은행은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청년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거나, 지역 거점으로 돌릴 수 있다면 30년 뒤 인구가 기존 예측 대비 50만 명 가량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시나리오일까요? 지금도 혁신도시 등 지역 균형 개발 정책은 지속되어 왔는데,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 건 아닌가요?
"정말로 (지역 분산을) 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많이 쪼개서 지역에 조금씩 주다 보니 효과를 낼 수 없었을 수도 있죠. 그리고 한국은행 연구의 전제는 지역에서 서울로 떠나는 청년을 잡아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어려운 얘기죠.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에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고, 회사들이 R&D 개발을 하고 젊은 인구를 고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죠. 만약 지역에서 개발자를 구하는 게 어렵다면 그걸 정부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죠. 대기업들은 근본적으로 '공중 부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걸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중소기업이 강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는 50만 명이 증가하는 것이었지만 중앙대 마강래 교수팀은 300만 명 증가로 예상했어요. 그러니까 2054년에 4천만 명으로 줄어들 인구가 4300만 정도까지는 유지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해마다 20조씩 30년 동안 지역 균형 발전에 투자해야죠. 결국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철도를 깔아야 한다는 얘기예요. 청년들이 한 지역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고 일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인구가 줄어드는데 이렇게 하면 덜 줄어들 수 있대요. 인구는 곧 경제력입니다. 경제력도 보존할 수 있고 지역도 하나의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것이에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지역 균형 발전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우리가 빨리 버려야 해요. 지역이 사라지는 것,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에서도 청년이 떠나는 것이 결코 나와 무관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저 역시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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