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지난해 3월 서울역 인근에서 여성 노숙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 노숙인은 4시간 동안 300번의 폭행을 당하고 사망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종합일간지 한 군데에 기사가 게재될 뿐이었다. 여성 노숙인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것일까?

지난 2월 27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길에서 여자가 살았다' 편이 방송되었다. 쪽방촌에 사는 별이씨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취재 기자가 직접 노숙하며 여성 노숙인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방송 다음 날인 2월 28일 해당 회차를 취재한 하누리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폭행, 성범죄 노출된 여성 노숙인 "남자로 보이려 삭발하기도"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방송 마친 소회가 어때요?
"노숙인이 주제인 만큼 댓글 걱정이 있었는데요. 노숙인에 대해, '게을러서 일 안 하는 거 아니야?', '헤프게 살아서 저렇게 된 거 아니야?', '개인의 실패를 우리가 왜 도와줘야 돼?', '저 사람들한테 왜 복지를 제공해야 돼'라는 시선이 분명히 있고, 댓글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나 제작하면서도 이분들이 '열심히' 안 산 게 아니라는 점, 이렇게 내몰려 왔다는 점을 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드러났는지 다행히 댓글을 보니, 시청자 분들도 그 점을 많이 공감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 여성 노숙인 실태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제가 대학 때 '생명 윤리와 법'이라는 수업 듣다가, 교수님께서 노숙인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미국 뉴욕에서 1980년대에 노숙인이 많으니까 정신병원에 보내서 거리를 미화하겠다는 정책을 펼친 적이 있는데, 이때 가장 먼저 입원을 당한 노숙인이 조이스 브라운이라는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조이스 브라운은 이 문제를 재판으로 끌고 갔어요.

뉴욕시가 이 여성을 병원에 입원시킨 이유는 '계속 길거리에서 용변을 보고 누가 돈 주면 욕 하고 싸운다. 그래서 저 사람은 정신병자다'라는 것이었는데, 이 여성은 재판에서 '나는 여자라서 길거리에서 사납게 행동하지 않으면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고, 돈 갖고 있으면 그 돈을 누군가 갈취하려고 때리기 때문에 오히려 누가 나한테 돈 주면 화를 내는 거고, 내가 집이 없는데 어디에서 용변을 보겠냐? 당연히 길거리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항변했대요. 이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굉장히 유명 인사가 됐었대요. 이 이야기를 듣고 계속 여성 노숙인의 삶에 대해서 궁금하긴 했었습니다. 막상 기자가 되고 나서는 이 부분을 취재할 상황이 없었고, 어쩌면 용기를 못 냈던 거 같습니다. <창>에 다시 오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럼 기자님은 노숙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요?
"예전에 학교 가는 길, 고가도로 밑에 항상 계시던 젊은 노숙인이 있었어요. 그때 '되게 외롭겠다,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겠다'라는 생각만 했었거든요. 그때 쓴 일기가 있더라고요.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는지, 그 인생 이야기를 알고 싶지가 않다. 그 이야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제 기준'에서 제 마음 편한 대로 바라봤던 거죠. 이게 제작할 때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시청자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다. 알고 싶지 않을 텐데,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라고요."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처음에 취재는 뭐부터 했나요?
"서울역 건너편에 천주교, 수녀님들이 매주 요일을 정해서 여성 노숙인들한테 식사 제공을 하고 거기서 쉬고, 씻고 갈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 있습니다. 분도의 집인데 거기를 제일 먼저 갔었어요. 수녀님들께, 여기 오시는 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를 여쭤보려고 혼자 가서 이야기했었습니다. 수녀님께서 '이분들이 적응도 필요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거절하시면서도 여성 노숙인들의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때 설명 들은 내용이 취재 밑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 프롤로그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희재(가명)씨 이야기가 나오던데 왜 프롤로그에서 한 거예요?
"이 여성 노숙인 사망 사건은, 여성 노숙인들이 처한 상황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지원받지 못하고 거리에 있던 여성이, 폭행으로 사망한 거죠. 더불어서, 이 사건은 <한겨레신문>에만 실렸거든요.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없다는 것 또한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 노숙인이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가장 처음에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만났던 여성 노숙인 분들이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서울역'과 '남성'을 꺼린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시작으로 그 위험성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쪽방촌에 사는 별이씨 이야기로 시작했던데.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봤다고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별이씨는 서울역에서 지속적으로 당한 성범죄를 용기 있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건 사망한 희재씨 사건과도 연관 있는 내용이었고요. 프롤로그에서 이어가기 위해 별이씨가 등장했습니다. 또 저희가 영상물이잖아요. 별이씨가 성범죄를 안 당하려고 삭발했는데, '삭발한 모습 단 한 컷'에서 여성 노숙인의, 고된 삶을 바로 이해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고 하는 게 마음 아픈 것 같아요.
"맞아요. 평생 별이씨에게는 주변 남성들이 가해자였고, 집이나 길에서도 피해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본인이 '여자'로 살려면 '남자'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게, 참 아이러니하죠. 방송에는 안 썼는데 이분 꿈이 보디가드였다고 합니다. 자기를 아무도 안 지켜줬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쪽방촌 화장실에서 5분도 못 자"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밤에 서울역 지하 가셨잖아요. 어때요?
"여러 번 갔는데 밤 한 8시 이후면 소란스럽더라고요. 노숙인 분들도 계시고 주변 고시원이나 쪽방촌에서 나오신 분들도 계시고. '동료'니까 거기서 만나시기도 하고, 배식도 받으시고요. 여성 노숙인들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취한 분들이 무서울 수밖에 없죠. 하지만 또 거기서 친하게 지내시고 서로 지켜주시기도 하더라고요. 방송에서는 다소 무서운 모습만 담긴 점도 있지만, 함께 앉아있으니 한 남성 노숙인께서 저에게 핫팩을 몇 개씩 챙겨주시면서 '오늘 여기서 자려면 이거 있어야 된다 있어야 버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이었어요. 어디나 그렇잖아요. 신촌 거리만 가도, 한쪽에선 소리 지르고 술 먹고 하시는 사람도 있고 서로 챙겨주고 토닥여주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래서 그 '안'에 있을 때는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바깥세상의 압축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경순씨는 봉사들이 주는 밥 때문에 서울역 지하에 있었던 건가요?
"잠은 다른 데서 주무시는데, 서울역에서 배식이 있으니 음식 받아서 모아두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는 바로 안 드시더라고요. 또, 서울역에서 친해지신 분들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조금 담소도 나누시고 가시는 것 같았어요. 어떤 남성 노숙인이 오셔서 경찰한테 검문당했다고 하소연을 경순씨한테 하더라고요. 경순씨는 엄마처럼 하소연을 들어주고요."

- 영등포역 옆 쪽방촌 화장실에서 기자님도 노숙하셨잖아요. 어땠어요?
"사실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한 5분 정도 약간 정신이 희미해지다가 다시 깼거든요. 못 잔 이유는, 첫 번째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방송에 나온 것처럼 잠 잘 틈이 없었고요. 두 번째는 남자들이 들어오지 않아도 밖에서 보고 가더라고요. 그게 문간에 누워있으니 잘 보여서 계속 곤두섰고요. 세 번째는, 너무 추웠어요. 근데 이게 '세 번째 이유'입니다. 추운 건 별 게 아니었단 거죠. 패딩, 침낭, 핫팩 다 챙겼는데 발이 너무 시려웠고, 바닥의 축축한 한기가 등으로 전해져오니까 핫팩이 소용이 없더라고요. 저야 또 처음이고, 취재도 해야 하고 하니 더 그랬을 텐데 원래 그곳에 계시는 두 분도 거의 못 주무시더라고요. 그분들이 화장실 비워줘야 되니까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말씀하신 게 '9시까지만 한번 자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참, 아프게 들렸습니다."

- 거기는 어떻게 간 거예요?
"원래는 그 며칠 전에 다른 분을 취재하러 갔어요. 노숙 위기에서 벗어나서 쪽방에 사는 여성이었는데요. 그 쪽방에 화장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화장실은 어디 쓰시냐 했더니 그 공중화장실을 쓰신다고 했습니다. 그때 공중화장실을 봤더니, 여성 노숙인 분들이 여기서 주로 지내신다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주위에 계신 다른 여성 노숙인께 '저기서 저도 잘 수 있냐'라고 여쭸더니 '박스 깔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노숙하는 날 서울역에서 자는 걸 실패하고, 생각이 나서 영등포로 갔습니다."

- 화장실에서 150m 거리에 노숙인 지원 시설이 있는데 안 가는 건 남성들 위주이기 때문인가요?
"주로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시설 가서 여자들이 거기서 누워서 자려면 방이 안 나뉘어 있어서 남자들과 혼숙해야 되는데요. 여성 노숙인들은 기본적으로 남성들을 무서워하시는 데다, 혼숙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면 꺼릴 수밖에 없죠."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여성 노숙인의 절반 이상이 가정 폭력으로 인한 건가 봐요?
"제가 만난 20명 중에 '가정 위기'로 나온 경우가 절반이었습니다. 이게 모두 폭력은 아닙니다. 가정 위기, 그러니까 해체도 있었고... 말 그대로 쫓겨난 경우도 있었고요. 그리고 미국의 예를 봤는데.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여성 노숙인들 대상으로 조사해 봤더니 30%가 폭행 그러니까 남편의 폭행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길거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 방송에 나온 수치는 나라나 기관에서 조사한 게 아닌가요?
"제가 석 달간 직접 만난 분들한테 공통적으로 묻고 집계한 것입니다. 모수는 아주 부족하지만, 공통된 상황이 있었습니다."

- 이해가 안 가는 게 이런 건 국가에서 알아봐야지 않나요?
"여성 노숙인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내가 노숙인인데 경찰서를 어떻게 가냐?'라는 분도 있었고요. 실제로 한 노숙인은, 경찰서에 갔는데 이게 밤늦게 길거리 뒤편에서 범죄가 발생하니 증거도 없고, 소용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피해 당하고도 지나가는 경우가 많겠죠. 적어도 제가 만난 분들은 다 그랬습니다.

이게, 여성 노숙인 지원이 따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해를 입고도 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치유'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때 치유를 못 받고 계속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쌓여 있는 거죠. 그래서 신체는 물론 심리 치료 지원도 필요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 여성 노숙인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졌잖아요. 답도 생각해 보셨을 것 같은데.
"제가 그 문장을 쓴 건,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고, 여전히 이분들을 보는 시선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분들이 '스스로'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여성 노숙인들과 함께 밥 먹고, 간식 먹고, 수다 떨면서 제가 오히려 위로받았습니다. 우리 할머니 같고 우리 엄마 같았거든요. 취재하면서 이렇게 '챙김'을 많이 받아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외부적인 문제로, 거리에 있을 뿐 '다른 종족'의 사람이 아닙니다."

- 취재하며 어려운 점은 뭘까요?
"카메라에 이분들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전 섭외'라는 게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분들 대부분은, 사실 '그날' '한 번에' 만나서 인터뷰한 게 아닙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수차례 카메라 없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카메라 들고 가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지사님들도 한 번에 친해질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서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간 세상으로부터 피해 받고 버림받아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분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2개월, 단기간에 인터뷰도 하고 속마음도 들어야 하다 보니 매일같이 거리에 나갔습니다. 감사하게도 방송을 허락해 주셔서 거의 모자이크 없이 이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제 와서 죄송한 점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여성 노숙인의 24시' 이런 그림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밖에서 씻고, 자고, 먹고 하는 모습요. 그래서 '어디서 자냐, 같이 가도 되냐'고 제가 집요하게 묻는 모습도 방송에 담겼는데요. 이게 보통 인터뷰이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들이죠. 어떤 여성이 먹고 자고 씻는 모습을 방송에 보이고 싶어 하겠습니까. 더구나 이분들은 잠자는 곳을 노출하는 건 '생사'의 문제인데, 이걸 깨달은 순간 '생활하는 모습'을 자극적으로 담겠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대신 제가 밖에 나가기로 한 겁니다."
하누리 시사기획창 노숙인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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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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