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극단 측에서 만든 포스터.
극단 코너 스톤
여행자극장은 우리 집에서 몇 분만 걸으면 바로 닿는 극장인데 어제 동네 친구인 오세혁 작가가 "이 연극 안 보셨으면 얼른 보세요"라고 권하는 바람에 아내가 전화를 해봤더니 현매가 가능하다고 해서 환호작약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좋은 작가와 연출가 등 연극인들이 추천한 극을 놓치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상연 시간 다 돼서 현매로 사면 티켓값도 저렴한 편이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난 극단 코너 스톤의 작품을 본 적이 없는데 아내에게서 <맹진사 댁 경사>를 각색한 <맹>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면 안갯속에서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노래를 하는 배우 다섯 명이 보인다. 뭔가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배우들이 정지 화면처럼 서 있으니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나마 강일 배우나 한철훈 배우가 중심에 서서 진지하게 한 마디 하면 나머지 배우는 그림처럼 굳어서 그냥 서 있다. 특히 윤슬기 배우는 옆모습으로 서서 꼼짝도 안 하고 한참을 서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런 균형이 깨지는 것은 건넛마을 상여 나가는 걸 가지고 뭐라 의미 없는 소리를 주고받던 배우들이 갑자기 심심하니 윷놀이나 한 판 하자고 할 때부터다. 윷을 놀려면 윷가락 네 개가 있어야 하고 멍석이나 윷판도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동작으로만 해결한다. 두 사람이 쩔쩔매며 멍석을 들고 와 까는 모습에 이어 윷판을 분필로 바닥에 그린다. "의이차!" 하고 윷을 던지는 모습이 이어지는데 이게 모두 실체는 없고 시늉만 하지만 관객들은 다 진짜처럼 반응한다. 연극이니까, 연극에서만 가능한 장면이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유치해서 못 본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고속촬영 같은 표정이나 동작도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하며 웃기고 울릴 수 있다. 그런데 석구의 아내가 나와서 자식을 잃은 사연을 털어놓는 장면 빼고는 거의 다 윷놀이 장면인데 이게 이렇게 재밌을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