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사진
연극열전
"제 이야기는 사실이고, 압도적이며, 조작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1988년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버나드 브루시코'가 자신이 사랑했던 중국인 경극 배우 '쉬 페이푸'의 진실을 알게 된 후 한 말이다. 여자인 줄 알았던 쉬 페이푸가 사실 남자였고, 그가 자신으로부터 비밀스런 정보를 빼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버나드 브루시코는 진실을 외면한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가 진실이고, 또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믿는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위의 이야기만 듣고는 '어떻게 남자인 걸 몰랐을까?' 싶을 수 있다. 둘은 성관계도 가졌고, 쉬 페이푸는 이를 토대로 자신이 임신했다며 버나드 브루시코를 속이기까지 했으니 의문은 더 커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 덕분이었다.
<엠. 버터플라이>는 그 관념을 더 치밀하게 조직하고, 야릇하게 비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버나드 브루시코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 '르네 갈리마르'는 배수빈, 이동하, 이재균이 번갈아 연기하고, 쉬 페이푸에게서 착안한 캐릭터 '송 릴링'은 김바다, 정재환, 최정우가 연기한다. 20주년을 맞이한 '연극열전'이 올해 첫 번째로 선보이는 작품 <엠. 버터플라이>는 오는 12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관념을 야릇하게 비틀다
연극 초반부에 경극 배우 송 릴링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선보인다(지아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로, 영제는 'Madam Betterfly'이다). 오페라의 내용을 아주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오페라에는 일본인 여성과 미국인 남성이 등장한다. 해군 장교인 미국인 남성은 이곳저곳 닻을 내리며 사랑하기를 좋아하는 모험적인 성격으로, 게이샤에서 일하는 일본인 여성을 끌어들여 혼례를 치른다. 일본인 여성은 남성을 위해 헌신하지만, 남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배를 타고 떠난다. 남성은 미국인 여성과 다시 결혼하고, 3년 후 일본인 여성 앞에 아내와 함께 나타나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이에 일본인 여성은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숨어서 자결한다.
미국의 탈식민주의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이야기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풀어 말해 '비서구(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이 <나비부인>에 녹아있다. 모험적이고 강인하며 여러 여자를 사랑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서양 남성, 오랜 시간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지조 있고 순종적인 동양 여성. 여기에는 오리엔탈리즘과 함께 여성에게 억압적인 젠더 관념도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