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최고 명문 KIA 타이거즈가 '초보 사령탑' 이범호 시대를 맞이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KIA는 지난 2월 13일 1군 코치였던 이범호 감독을 사령탑으로 내부 승격시키며 계약 기간 2년, 총액 9억원에 계약을 맺고 구단의 제 11대 감독으로 낙점했다. 일부 팬들은 벌써부터 이범호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이었던 '꽃범호'의 감독 버전인 '꽃동님'이라는 애칭을 지어주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범호 신임감독의 등장은, 프로야구계에서 여러모로 신선한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1981년생인 이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80년대생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감독이 두 살이던 1982년에 KBO리그가 첫 출범했다. 1976년생인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과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제치고 이범호 감독이 2024시즌 프로야구 막내 감독이 됐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KIA에서 선수생활을 보냈지만 이른바 '타이거즈 성골'은 아니다. 이 감독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프로에서는 200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서 대전-충청 연고팀인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 국내에 복귀하면서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은 이후 은퇴할때까지 후반기 선수 커리어를 함께했다.
 
KIA는 전통적으로 타이거즈 순혈주의가 강한 편이었다. 김응용 감독 이후 김성한, 서정환, 유남호, 선동열, 김종국 등 역대 사령탑들의 대다수가 타이거즈 출신이었다. 하지만 정작 타이거즈 출신 감독중 지금까지 친정팀에서 성공한 사례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오히려 해태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끈 김응용 감독(9회 우승)을 제외하고 타이거즈를 우승으로 이끈 것은, 모두 조범현(2009년)과 김기태(2017년)라는 비(非)타이거즈 출신 감독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또한 이범호 감독은 굉장히 미묘한 과정을 거쳐 미묘한 시기에 지휘봉을 잡았다. KIA는 전임 김종국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수사를 받게되면서 경질당하는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이로 인하여 KIA는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새로운 감독을 구해야하는 다급한 상황에 처했다. 시즌중에 성적부진으로 감독이 교체된 사례는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KIA는 후임 감독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수단의 안정과 연속성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이범호 감독을 내부승격시키는 결론을 내렸다. 외부에서는 선동열 전 감독, 이종범 전 LG 코치 등 명망높은 타이거즈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구단 내부적인 판단은 전혀 달랐다.
 
그만큼 이범호 감독이 KIA에서 성공적인 선수 커리어를 보냈고, 코치로서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차피 KIA에서도 미래의 감독 후보로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이범호 감독의 예상보다 빠른 감독 승진에도 불구하고 야구계 안팎의 반응은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초보 감독으로서 자신의 야구철학을 구상하고 시즌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하필 전임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면서 팀을 떠났기에,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감독은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은 만큼 대부분의 신임 감독처럼 '자신만의 사단'을 꾸릴 여유가 없었다. KIA는 일단 이범호 감독의 사령탑 승격 외에는 진갑용 수석코치-홍세완 타격코치 등 기존 코치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아무래도 초보감독의 경험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범호 감독으로서는 자신이 데려온 코치도 아니고 어제까지만 해도 상급자였던 선배 코치들을 이제는 이끌고가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감독의 리더십을 지원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한 초보감독이라고 해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낮은 것도 아니다. KIA는 전통적으로 열성적인 팬들의 기대치가 매우 높은 데다, 올시즌 팀전력도 5강 이상을 넘어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도 선임 직후 "어려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감독 자리를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KBO리그 역사에서 초보 감독이 승승장구했던 사례도 적지 않다. 해태 왕조의 전설로 꼽히는 김응용 감독만 해도 1983년 부임 첫해만에 전시즌 6개구단 중 4위에 그쳤던 팀을 당당히 정상으로 이끌었다. 물론 김 감독은 프로 출범 이전에 실업야구 한일은행 감독이 있어서 완전한 초보 감독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프로 지도자 경력만 놓고보면 선동열 전 삼성 감독, 류중일 국가대표팀 감독, 김태형 롯데 감독 등이 모두 프로 첫 해부터 우승을 경험한 초보감독들이다. 선 감독은 친정팀 KIA에서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삼성 시절에는 막강한 전력을 등에 업고 2005-2006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했다. 후임인 류중일 감독 역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 정규리그 5연패를 이끌며 '삼성 왕조'를 열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베어스 시절 2015년부터 첫 지휘봉을 잡아 2021년까지 무려 7년 연속으로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았고, 각각 3회의 한국시리즈와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물론 이러한 초보 감독들의 성공에는 본인의 지도력만이 아니라 구단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 꾸준한 선수육성 등으로 이미 '우승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가능한 성과였다.
 
또한 불미스러운 감독교체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사례도 있다. 1994년 OB베어스(현 두산)는 초유의 선수단 집단 항명 사태로 당시 윤동균 감독이 퇴장하고 '덕장'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이듬해인 1995년 당시 OB를 강팀으로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신임 감독의 지휘 아래 똘똘뭉친 선수단은 그동안 못보여준 잠재력을 발산하며 일약 통합우승이라는 대반전을 이뤄낸 바 있다.
 
이범호 감독 역시 초보 사령탑임에도 당당히 우승을 선엄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4시즌 KIA는 김도영-박찬호로 이어지는 테이블세터, 나성범-최형우-소크라테스 브리토로 구성된 중심타선, 양현종-이의리-윤영철로 이어지는 국내 선발진에 새 외국인 투수 윌 크로우까지, 베스트멤버로는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쉬웠던 백업선수층과 유망주들의 성장이 뒷받침된다면 우승 도전도 결코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지난 시즌 아쉬웠던 벤치의 경기운영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이제 이범호 신임감독의 몫이 됐다.
 
다만 강팀을 만들어가는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타이거즈를 정상까지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이나 김기태 감독은 팀을 우승시키고도 임기 내내 극성팬과 미디어로부터 숱한 비난을 들어야했을만큼 타이거즈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로도 불린다.

이범호 감독이 후회없이 자신의 야구철학을 펼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꽃동님' 이범호 감독이 초보 감독의 새로운 성공신화를 개척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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