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다른 곳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이 선진국 사람들의 흔한 오만이라지만, 그럼에도 비판할 밖에 없는 것이 있다. 법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옥죄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마을에서는 태어난 아이의 탯줄을 자르며 어른들이 그가 장차 혼인하게 될 이의 이름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는 성년이 되면 마침내 탯줄을 자를 때 예고됐던 이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그를 좋아하느냐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전통도 있다. 이를테면 어느 명절날엔 마을 청년들이 모여 서로 발을 씻는 풍습이 있는데, 발을 씻으러 가는 처녀의 옷을 청년이 잡아당기면 그녀는 싫든 좋든 그와 맺어져야 한다.
 
무슨 구닥다리같은 이야기냐고? 누군가는 어처구니없어 할 이러한 일이 지구 한 곳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전통이며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세속적 친미정권이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세이니의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회귀했다. 폐지됐던 종교경찰이 득세하고 코란에 근거한 온갖 교리가 일상을 파고들어 국민의 삶을 옥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노 베어스 포스터

▲ 노 베어스 포스터 ⓒ 엠엔엠인터내셔널

 
정부 탄압 속 만들어진 영화
 
2022년엔 히잡을 제대로 안 착용했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게 끌려간 스물둘의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해 수많은 명사가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 중 많은 수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4명이 실제로 처형당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중동의 강국으로 손꼽히는 이란의 현실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다. 거장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그가 자유를 빼앗긴 신세가 되어 이란에 묶여 있다. 그의 작품활동이 체제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가 출국금지 조치는 물론 20년 간 영화제작 금지 결정까지 내렸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부 탄압을 피해 영화를 만드는 법을 단련하기라도 하는 듯,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택시> <3개의 얼굴들> 등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다. 그 결과 정부는 그를 채포해 구금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그 와중에도 정부에 저항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끊임없는 갈등을 벌여왔다.
 
노 베어스 스틸컷

▲ 노 베어스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

 
구금된 거장의 원격 연출
 
<노 베어스>는 그가 마지막 구금되기 직전 완성한 작품이다. 극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듯, 감독 자신이 주연으로 나선 페이크 다큐로 제작됐다. 또 얼마쯤은 극영화인 듯 배우를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국외에 있는 배우를 내세워 이란에 있는 감독이 원격으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연한 이는 실제로 해외에 망명해 있는 미나 카바니다. 2014년 작 <레드 로즈>에서 누드 신을 촬영한 뒤 살해위협에 시달리며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한 바로 그 배우다.
 
영화는 이란과 튀르키예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찍던 중 어떠한 이유로 이 마을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다. 영화는 국경 너머에서 촬영되고 있는데, 이 마을에서 원격으로 디렉팅을 하겠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 외딴 마을에선 인터넷도 되지 않고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다. 마음처럼 되는 것 하나 없는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양, 파나히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일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순박한 줄만 알았던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파나히 감독이 찍고 다닌 사진이다. 사람들은 파나히 감독이 찍은 어느 남녀의 사진을 문제 삼는다. 사진 안엔 한 남녀의 모습이 담겼는데, 여느 커플 같던 남자와 여자가 실은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여자에겐 탯줄을 자를 때 맺어진 다른 짝이 있어서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인 그들의 관계는 이뤄질 수 없다는 이유다.
 
파나히 감독에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제법 심각한 문제인 듯, 그들은 감독이 머무는 숙소까지 쳐들어와 사진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젊은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를 잡을 물증이 있어야 이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거다. 감독은 사진이 없다고 말하지만 어린 소년을 증인으로 내세워 그가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데야 도리가 없다. 결국 감독이 마을의 간이 종교재판소에 피의자 신분으로 서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노 베어스 스틸컷

▲ 노 베어스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

 
그 곰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를 찍겠다며 국경마을로 간 파나히 감독이 이곳의 요상한 전통에 휘말려 마주하는 고난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실감나게 그린다. 분쟁과 폭력을 막겠다며 전통을 세우는 이가 있고, 그 전통으로부터 제 본연의 삶을 억압당하는 이가 있고, 다시 그 전통에 힘입어 이득을 취하는 이가 있다. 그 모습이 현재 이란이 드러내는 모순과도 얼마 다르지 않아 파나히 감독의 비판정신이 얼마만큼 날이 서 있는지를 알도록 한다.
 
영화의 제목은 극중 마을의 한 노인이 파나히 감독에게 건넨 말로부터 가져왔다. 종교재판에 서게 됐다는 파나히 감독에게 노인은 길을 안내하며 곰이 나온다는 마을 어귀의 외딴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그 길은 곰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피해오던 곳이지만, 실상은 곰은 없고 소문만 무성하단 것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겁을 먹어 밤중에 먼 길을 나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 실제로 곰이 출몰해서가 아니라는 노인의 말에 파나히 감독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 가운데도 알게 모르게 곰이 나온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골목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골목을 다니는 건 사람의 자유로운 행보일 것이지만 누군가가 그 길목에 곰이 나온다 허풍을 떠는 통에 더는 자유로운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는 곰은 없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포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지만, 모두가 곰이 있다고 믿어 길을 나서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사람이 사람을 제약하는 일, 그로부터 본연의 아름다움이 펼쳐지지 못하고 꺾여버리는 부조리를 파나히 감독이 제 영화를 통하여 지적한다. 그의 영화는 결코 새로움을 말하지 않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의 이란, 나아가 인간을 억압하는 여러 나라와 법제에 유효한 일격을 가한다.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모든 압제로부터 인간을 구해내야 한다는 파나히의 외침이 제 법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며 인간을 억압하는 이란의 강요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노 베어스 스틸컷

▲ 노 베어스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베어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자파르파나히 이란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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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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