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이란 말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라도, 사회도, 지역도, 내 이웃과 동료까지도 나를 챙기지 않는다는 불안이 사회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나를 책임질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지만, 끝까지 마음 걸리는 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가족이다.
 
누구도 챙기지 않는 이가 바로 내 가족이라면 나라도 그를 챙겨야 하는 것이 이 나라 현실이 아닌가. 설상가상 장애며 치매, 말기질환과 같이 보살핌과 돈이 들어가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 모든 부담이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질 것이 빤한 일이다.
 
한국의 장애인 인구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등록된 것만 해도 260만을 훌쩍 넘는다. 치매 인구수 또한 경증을 포함 100만 명에 육박하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돌봄 부담을 지고 있을 그 가족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가 제 가족의 부양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간병의 스트레스란 얼마나 클 것인가. 올해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간병살인 가해자 수가 150명을 넘기는데, 그 상당수가 주변에서 효자, 효부라는 소리를 듣던 이들이다(송명환 저, <헌법상 보건권 실현을 위한 사회보장법제 및 보건의료법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효자, 효부를 살인자로 만드는 척박한 현실이야말로 이 시대 복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영화 <파로호> 포스터

영화 <파로호> 포스터 ⓒ 더쿱

 
각자도생 사회, 스릴러가 되다
 
피부로 느껴지는 이같은 위험을 영화가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주목받는 신예 임상수의 <파로호>가 바로 그와 같은 작품으로, 영화는 치매노인을 홀로 간병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풀어간다.
 
제목에 쓰인 파로호는 실제 지명이다. 강원도 화천과 양구, 두 지역에 걸쳐 있는 큼지막한 인공호수다. 북한강 협곡을 막아 세운 화천수력발전소 바로 위에 자리한 이 호수는 주변 경관이 좋아 한때는 관광지로도 명성을 날렸다. 지금도 낚시터로 제법 이름이 있는 이 호수를 영화가 제목으로 끌어다 쓴 데는 얽힌 사연이 자리한다.
 
파로호의 이름을 지은 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한국전쟁 중 양평과 가평 일대에서 중공군 공세를 막아낸 육군 제6보병사단이 패주병을 쫓아 마침내 파로호에서 적을 섬멸하니, 대통령이 이를 기념해 사로잡은 오랑캐를 뜻하는 '虜'자에 깨뜨릴 '破'자를 붙여 파로호라 명명한 것이다.
 
 영화 <파로호> 스틸컷

영화 <파로호> 스틸컷 ⓒ 더쿱

 
수만명 시신 수장한 호수
 
파로호에서 적을 깬 뒤 파로호 일대에서 바로 이어진 화천전투에서도 육군은 북한과 중공군 병력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때 나온 시신만 수만 구에 이르는데, 마땅히 처리할 곳이 없자 파로호에 던졌다고 알려졌다. 그로부터 이 호수에 연관한 수많은 으스스한 이야기가 생성되니 물고기 많고 풍경 좋다고 알려진 파로호가 담력 좋은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된 연유라 하겠다.
 
파로호에 대한 이 같은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극중 배우의 대사를 통해 그대로 설명된다. 영화가 파로호를 제목으로 가져오고, 이를 영화의 분위기로 다시 녹여내려 한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치매가 걸린 어머니를 홀로 수년 간 부양해온 청년과 파로호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야기가 밝고 경쾌할 거라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다.
 
도우(이중옥 분)는 지자체에서 수여하는 효자상까지 받은 소문 자자한 효자다. 여관집 아들로 화천에서 알프스모텔을 운영하지만 시설이 노후하고 지역경기도 침체돼 장사가 거의 되지 않는 형편이다. 그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어머니다. 병세는 갈수록 안 좋아져서 그는 홀로 어머니를 돌보는 데 진을 빼야 한다. 어느덧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치매노인을 홀로 모시는 화천 사는 낙후된 여관 주인에게 어느 여자가 오겠는가. 심지어는 성격조차 활달하지 못해 연애와도 담 쌓고 지낸 게 오래된 일이다.
  
 영화 <파로호> 스틸컷

영화 <파로호> 스틸컷 ⓒ 더쿱

 
실종된 치매 노모, 야산엔 변사체가
 
문제는 어느 날 어머니가 실종되며 벌어진다. 평소 괴로울 때마다 어머니가 처방받은 안정제를 한 알씩 몰래 먹던 그가 여러 알을 함께 삼킨 날이었다. 정신을 잃고 그가 쓰러진 그 날, 여관에 누군가 왔던 것일까. 깨어나 보니 어머니는 오간 데 없고 웬 개 한 마리가 모텔 주변을 떠돌고 있다.
 
며칠 후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김대건 분)가 여관에 장기투숙을 하더니, 수시로 다방 종업원 여자(김연교 분)를 불러서는 함께 웃고 떠들고는 한다. 사내는 뜬금없이 도우에게도 식사를 함께 하자 청하고, 도우와 사내의 불편한 자리도 이따금 이어지게 된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으랴, 또 갑자기 들어온 손님을 맞으랴, 정신없는 상황 가운데 실종자 수색을 하던 경찰이 야산에서 젊은 여자의 변사체를 발견하며 상황은 조금씩 긴박해져 간다.
 
도우는 정체를 모르는 손님을 의심하지만 증거도 없이 누구를 무고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영화는 조금씩 사내와 도우 사이를 오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긴장을 자아낸다.
  
 영화 <파로호> 스틸컷

영화 <파로호> 스틸컷 ⓒ 더쿱

 
효자가 살인자 되는 사회
 
영화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아도 꽤 만듦새 좋은 심리 스릴러라 할 수 있겠다. 얼굴을 보면 다들 아는 이름난 배우가 등장하진 않지만 필요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십분 해내는 좋은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한국 영화계가 그리 얄팍하진 않다고 주장하는 듯한 이들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영화의 긴장감 또한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러닝타임 대부분을 지탱해나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사회문제라 해도 좋을 돌봄노동의 개인화를 영화의 소재로 끌어다 쓴 선택이다. 갈수록 쇠락하는 화천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이, 어머니를 떠안고 무너져가는 효자의 상황과 어우러져 관객에게 특별한 감상을 일으킨다. 이쯤되면 영화가 한국 사회를 반영한 스릴러가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든다.
 
<파로호>에서 가장 잔인한 건 극의 중심에 있는 한 건의 실종과 또 한 건의 살인만은 아니다. 쇠락하고 낙후돼 마침내 소멸할 것이 훤히 내다보이는 지역과 사람에 대하여 따스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국가와 사회다. 영화 속 화천에서의 시위 장면이나 지역 기독교 공동체 말고는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 도우의 상황이 이를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과연 우리 사회에 파로호는 이 곳 하나뿐인가. 죽으면 저기 호수에 던져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각자도생 사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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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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