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7세로 어느덧 고등학생의 학부모가 된 '중년배우' 차태현은 올해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연기를 했을 정도로 연예계를 대표하는 동안 배우로 꼽힌다. 차태현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넘나들면서 20년 넘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안 활동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큰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고 크게 슬럼프에 빠진 적도 없이 오랜 기간 꾸준히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 제1회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차태현은 1998년 안재욱, 김희선 주연의 의학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 허재봉을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해피 투게더>와 <햇빛 속으로> <줄리엣의 남자>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밀레니엄 스타'로 급부상했다. 2001년에는 솔로앨범을 발표해 지금의 아내가 가사를 쓴 'I Love You'라는 노래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1997년 박중훈 주연의 영화 <할렐루야>에서 문제아 역할로 영화에 데뷔한 차태현은 2001년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를 연기하며 연예계 전체가 주목하는 최고의 신예스타 전지현과 연기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차태현은 차기작에서도 전지현 못지 않게 떠오르는 신예배우 세 명과 함께 하는 엄청난 '호사'를 누렸다. 무려 손예진과 고 이은주가 상대역이었고 문근영이 여동생으로 나왔던 이한 감독의 <연애소설>이었다.
 
 <연애소설>은 2000년대 초반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배우 3명이 함께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

<연애소설>은 2000년대 초반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배우 3명이 함께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 ⓒ 코리아픽쳐스(주)

 
잔잔하고 인간적인 이야기에 특화된 감독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이한 감독은 <고래사냥>과 <기쁜 우리 젊은 날> <천국의 계단> 등을 연출한 배창호 감독의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02년 직접 연출과 각본을 맡은 <연애소설>을 통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2002년 9월에 개봉한 <연애소설>은 당시 대세였던 조폭코미디 <가문의 영광>과 맞붙었음에도 서울에서만 58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3년 <연애소설>의 주인공 이은주가 주연을 맡은 <하늘정원>의 각본을 쓴 이한 감독은 2006년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한 차례 좋은 호흡을 보여준 권상우, 김하늘 주연의 <청춘만화>를 연출했다. <청춘만화>는 전국 206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교적 선전했지만 2007년 감우성, 최강희, 정일우, 이연희 등이 출연한 세 번째 영화 <내 사랑>은 97만 관객으로 100만 관객의 문턱에서 좌절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데뷔 후 세 편 연속 멜로장르의 영화를 연출했던 이한 감독은 2011년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빈곤층, 장애인,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신작 <완득이>를 통해 531만 관객을 동원했다. 2014년에는 김희애가 1993년 <101번째 프로포즈> 이후 21년 만에 선택한 영화이자 교내 왕따문제를 다룬 <우하한 거짓말>을 만들어 161만 관객을 모았다(김유정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

2015년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이 연출한 이승기, 문채원 주연의 <오늘의 연애> 각색에 참여한 이한 감독은 2016년 <미생>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임시완 주연의 <오빠생각>을 연출했다. 그동안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은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이한 감독은 처음으로 100억 원의 거액이 들어간 영화를 연출했지만 <오빠생각>은 전국 106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실패했다. 하지만 이한 감독의 슬럼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한 감독은 2019년 정우성, 김향기 주연의 법정물 <증인>을 통해 253만 관객을 동원하며 <오빠생각>의 부진을 털어버렸고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평단에서도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이한 감독은 지난 8월 '어른들의 멜로'를 표방한 유해진, 김희선, 차인표, 진선규, 한선화 주연의 <달짝지근해: 7510>을 선보였다. <달짝지근해>는 이한 감독이 코미디 장르에서도 감각이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전국 138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배우들의 미숙한 연기마저 사랑스러운 영화
 
 <연애소설>은 월드컵을 개최했던 2002년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이 열렸던 1997년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다.

<연애소설>은 월드컵을 개최했던 2002년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이 열렸던 1997년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다. ⓒ 코리아픽쳐스(주)

 
학교선배(박용우 분)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환(차태현 분)은 손님으로 찾아온 수인(손예진 분)과 경희(이은주 분) 중 수인에게 첫 눈에 반한다. 카페를 나간 두 사람을 쫓은 지환은 용기를 내 수인에게 고백을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 하지만 지환은 시계를 구해와 시간을 1시간 전으로 돌린 후 두 사람에게 '자신의 고백은 잊고 친구가 되자'고 제안했고 수인과 경희도 지환의 귀여운 제안을 받아줬다.

 <연애소설>은 세 주인공 지환과 경희, 수인의 '삼각관계인 듯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 같은' 미묘한 사이를 다룬 멜로 영화다. 여기에 지환의 동생으로 나오는 지윤(문근영 분)의 짝사랑이 서브스토리로 그려진다. 스토리가 다소 정적으로 흘러가고 후반부엔 뜬금없는 전개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리즈시절'의 차태현과 손예진,이은주가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을 사로잡기 때문에 영화의 단점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과 <선희 진희>를 통해 무명 시절 없이 곧바로 주인공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손예진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이한 감독의 <연애소설>까지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연애소설>의 수인은 손예진의 신인 시절 이미지였던 '청순가련'을 인간으로 빚은 듯한 캐릭터였다. 물론 2002년의 손예진은 연기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신인이었고 지금의 손예진처럼 발군의 연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손예진이 <연애소설> 이후에도 20년 넘게 연기활동을 이어가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반면에 이은주는 <연애소설>이 개봉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5년2월 만 24세의 너무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연애소설>은 이은주의 빛나는 시절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이은주는 <연애소설>에서 중반까지 털털하고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다가 후반엔 성숙한 연기를 통해 한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보여줬다.

2장으로 발매된 <연애소설>의 OST 역시 멜로영화의 OST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이 들어있는 Part.1에는 윤종신과 유미, 성시경, 리치, 더 클래식 출신의 박용준 등이 보컬로 참여했고 차태현도 엔딩곡 <모르나요>를 비롯해 2곡을 불렀다. 영화에 삽입된 연주곡 위주로 담긴 Part.2에는 영화 속에서 손예진이 부른 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와 이은주가 직접 연주한 영화의 메인 테마곡을 들을 수 있다. 

제목에 가장 충실했던 국민여동생의 어린시절
 
 <연애소설>에서 차태현과 남매연기를 했던 문근영은 2003년 <장화,홍련>과 2004년 <어린 신부>를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도약했다.

<연애소설>에서 차태현과 남매연기를 했던 문근영은 2003년 <장화,홍련>과 2004년 <어린 신부>를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도약했다. ⓒ 코리아픽쳐스(주)

 
사실 <연애소설>의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바로 지환의 동생 지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책 대여점 점원 석진(김남진 분)을 짝사랑하던 지윤은 그곳에서 연애소설을 빌리며 혼자 사랑을 키워갔다. 하지만 석진은 곧 군에 입대하게 되고 지윤은 좋아했었다는 말도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혼자만의 이별을 한다. 하지만 지윤의 사진이 석진의 관물대에 걸리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영화제목에 충실한 지윤 연기한 배우는 아직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전의 문근영이 연기했다. 2000년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문근영은 <연애소설>에 이어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에서 수연 역을 맡았고 2004년엔 <어린 신부>를 통해 일약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랐다. 선한 이미지의 대명사 문근영은 내년 연상호 감독의 <지옥> 시즌2에 출연해 연기변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연애소설>에서는 2000년대 초반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강이 박용우가 연기한 철현의 여사친 민영 역으로 나왔다. 민영은 카페주인 철현과 언제나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멜로영화 조연캐릭터들이 그렇듯 철현과 민영도 마지막엔 결혼을 한다. 사강이라는 활동명은 2002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지었는데 한국이 실제로 4강에 진출하자 사강의 이름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드라마 <피아노> <다모>,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투가이즈> 등에 출연하며 개성파 조연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신승환은 <연애소설>에서 경희를 짝사랑하는 우체국 직원 민식을 연기했다. 민식은 경희가 미처 부치지 못하고 쌓여만 가던 편지를 지환에게 보내면서 지환이 경희를 찾는 데 본의 아니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다. 하지만 경희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에 몰래 들어온 것은 엄연한 '주거침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연애소설 이한감독 손예진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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