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적국에게 엎드리면 다시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다. 항복하면 내주게 되는 것들도 되찾을 수 없다. 항복하여 명맥만 유지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우리가 적국에게 갖다 바치려는 땅과 세금은 후손들이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에게는 항복할 권한이 없다."
 
현종, 강감찬, 지채문, 양규 등 여요전쟁에서 위기의 고려를 구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의 활약상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2월 9~10일 방송된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9~10회에서는 거란군의 침공에 맞서 위기에 처한 고려의 기만전술을 이용한 외교전과 서경 공방전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내용이 그려졌다.
 
고려는 통주 전투에서 총사령관 강조(이원종)가 붙잡혀 처형당하고 주력군이 궤멸당하며 최대 위기에 봉착한다. 거란군은 파죽지세로 서경(평양)을 향하여 진격한다. 수도 개경의 조정에서는 항복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유일하게 항전을 주장한 강감찬(최수종)은 현종(김동준)에게 시간을 끌기 위하여 거란(요나라)에게 거짓 항복을 가장한 기만 진술을 제안하고, 본인이 직접 사신으로 갈 것을 자청한다.
 
강감찬은 거란 황제 성종(야율융서)을 만나 현종의 '친조(일국의 군주가 상국의 조회에 참석해 신하를 자청하는 것)' 의사를 전하며 공격을 멈춰줄 것을 요청한다.
 
소배압(김준배)은 고려를 믿을 수 없다며 진군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강감찬은 "친조를 청한 것은 폐하의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진격하여 고려의 군사를 베신다면 앞으로 폐하가 정복하려는 모든 나라들이 끝까지 저항하게 될 것"이라며 성종을 설득한다. 성종은 의심을 거두고 강감찬의 요청을 받아들여 진군을 중지시킨다.
 
강감찬과 소배압은 둘만의 단독 회동을 가진다. 소배압은 "고려에도 신하가 많을 텐데 어찌하여 경같이 늙은 신하가 왔나?"라고 비꼬자 강감찬도 "거란에도 장수가 많을 텐데 어찌하여 도통같은 늙은 장수가 오셨나"라고 받아친다. 훗날 귀주대첩에서 양국을 대표하는 총사령관으로 격돌하게 되는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를 부각시키는 장면이다.
 
소배압은 동생 소손녕의 일화를 꺼낸다. 소손녕은 1차 여요전쟁 당시 거란군의 장수로 고려를 침공하여 서희와 강동 6주를 놓고 담판을 벌였던 인물로 유명하다. 소배압은 "아우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고려의 관리들은 하나같이 교활하니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믿지 말라고"라며 여전히 의심을 거두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소배압은 강감찬에게 만일 친조가 진심이라면 먼저 서경에 가서 항복을 받아올 것을 지시하며 압박한다.
 
하지만 서경 부유수 원종석(곽민석)은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거란에게 정말로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원종석은 조원(김중돈), 강민첨(이철민) 등 항전파 장수들을 구금하고, 강감찬과 함께 서경을 찾아온 거란의 사신들에게 친조가 거짓 항복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강감찬은 분노하며 원종석을 질타하지만 병사들에 의하여 강제로 끌려나간다.
 
강감찬은 포박당하여 거란 진영으로 끌려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때마침 길목에서 지채문(한재영)이 이끄는 고려군이 나타나 거란 병사들을 제거하고 강감찬을 구해낸다. 강감찬은 지채문에게 서경을 사수할 것을 부탁하고 어떻게든 공격을 늦추기 위하여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란의 진영으로 돌아간다.
 
서경으로 향하려던 거란군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항복표문을 들고 나타난 강감찬으로 인하여 다시 진군을 늦춘다. 그사이 서경을 지원하러 동북면에서 온 고려군이 도착한다. 소배압은 강감찬을 찾지만 이미 말을 타고 도주한 뒤였다.
 
강감찬은 거란군의 추격을 받아 급박한 상황에 몰리지만, 장연우(이지훈)와 황보유의(장인섭)가 이끌던 고려 패잔병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번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제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 거란 성종은 소배압에게 "당장 서경으로 진격하여 모든 것을 불태우라"고 지시한다.
 
탁사정(조상기)과 대도수(이재구), 지채문이 이끄는 동북면의 고려군은 서경을 넘기려는 항복파들로 인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양면에서 포위될 위기에 놓인다. 그런데 원종석의 수하였던 조자기(박장호)가 계속해서 갈등하다가 결국 항전파로 마음을 돌려 단독으로 성문을 열고 동북면 군사들을 맞아들인다. 지채문은 원종석을 비롯한 항복파들을 모두 처단하고 서경을 수복한다.
 
서경을 되찾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한 강감찬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간다. 조정의 신하들은 현종과 강감찬이 거짓 항복으로 거란을 기만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악한다. 현종은 강감찬이 무사히 돌아온 데 기뻐하며 "우리에게 항복할 권한이 없다"며 다시 한번 단호한 항전의지를 재확인한다.
 
신하들은 강감찬의 독단적인 행동을 질타한다. 최항(김정학)은 "이젠 우리가 항복한다고 해도 거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분노한다. 또한 채충순(한승현)은 "그러다가 발해가 멸망했다. 항복한 비루한 모습이라도 존재하는것과 사라지는 것은 다르다. 우리라고 무조건 내어주기만 할 작정이었겠는가. 우리도 목숨을 내걸고 서희처럼 협상하여 국익을 지키려고 했다. 공은 우리에게서 그 기회를 뺏은 것"이라며 항복파들도 나름대로 나라를 생각해서 내린 선택이었음을 항변한다.
 
한편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지승현)는 거란군의 배후 거점인 곽주를 탈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흥화진부사 정성(김산호)은 무리한 공격이라며 강력하게 만류하지만, 양규는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소수의 결사대만 이끌고 곽주로 향한다.

서경의 고려군은 초기에 거란의 공격을 몇 차례나 격퇴하지만, 성밖으로 출격하여 거란군과 싸우던 지채문이 패주하여 남쪽으로 쫓겨가면서 전세가 역전된다. 싸울 의지를 잃은 탁사정은 거란 황제가 있는 곳을 양면에서 공격할 것처럼 출격한 뒤, 대도수를 미끼로 삼아 혼자 도주해버린다. 단독으로 싸우던 대도수는 거란군에 생포당하고 만다.

서경의 고려군은 일거에 지휘부가 붕괴되는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개경의 현종과 고려 조정은 곧 서경이 곧 함락될 위기라는 전령의 급보를 받고 충격에 휩싸인다.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통주 전투와 서경 공방전은 2차 여요전쟁에서 실제로 고려의 첫 번째 고비였다. 고려군은 통주전투에서 거란과 정면승부를 벌이던 주력군이 궤멸당하고 사령관 강조마저 붙잡혀 전사했다. 현종은 서북면의 주력군이 소멸한 서경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하여 동북면의 도순검사였던 탁사정과 중랑장 지채문에게 병력을 이끌고 이동하게 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 시기에 현종이 거란 성종에게 시간끌기용 항복 사신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강감찬이 거짓 항복을 제안하며 직접 사신으로 갔다는 설정은 드라마의 창작이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 항복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강감찬이 끝까지 항전을 주장한 소수파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후로 한동안 구체적인 행적이 보이지 않고 잠시 기록에서 사라진다. 강감찬이 무언가 다른 임무를 띠고 외지로 파견나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자들의 해석이다.
 
성종은 실제로 고려의 거짓 항복에 낚여 진군을 중지했고, 때마침 동북면의 지원군이 서경에 도착하여 항복파들과 서경에 입성한 일부 거란군을 모두 제거하고 서경을 수복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서경 공방전은 지채문의 패주와 탁사정의 도주로 위기에 봉착하지만, 강민첨 등 남아있는 중간급 장수들의 분전으로 항전을 계속했다.
 
그리고 2차 여요전쟁은 거란군의 개경 공략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이하여 현종의 과감한 몽진(蒙塵, 수도를 버리고 피난하는것) 결정과, 양규가 이끄는 결사대의 '곽주 탈환전'이라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접어들게 된다.
고려거란전쟁 2차여요전쟁 서경공방전 강감찬 최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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