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배우 임도현이 해를 기다리는 방법>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배우 임도현이 해를 기다리는 방법>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배우 임도현이 해를 기다리는 방법
황지은, 임지선, 임호경 / 2022 / 극영화 / 12분
 
도현(임호경 분)은 자신이 출연했던 단편 영화로 칸영화제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래도 독립영화 쪽에서는 꽤 알아주는 배우였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는 것. 그는 지금까지도 커다란 영화제의 포스터를 현관문에 붙여두고, 칸에서 사 온 머그컵을 사용하며, 세계적인 스타 틸타 스윈튼과 함께 잔을 기울였던 때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지금 그의 일상은 백수에 가깝다. 코로나로 인해 촬영이 잘 잡히지도 않고, 그를 찾는 연락도 거의 오지 않는다. 배역이 주어지지 않는 배우는 이제 프레임 속의 인물이 아닌 프레임 바깥의 일상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영화 <배우 임도현이 해를 기다리는 방법>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많은 극장이 문을 닫고 영화 작업이 미루고 취소되며 자신의 자리를 잃은 영화인들의 모습을 일부나마 담아내기 위해 시도되었다. 실제로 영화는 카메라 바깥에 위치한 촬영감독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특정 지점마다 화면 안의 도현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그가 대답하는 인터뷰 형식이다.
 
배우의 이야기는 미술 작업을 하는 친동생(임지선 분)이 당분간 제주의 예술가 레지던스가 아닌 서울에서 지내겠다고 선언하며 계속된다. 그녀를 대신해 내려간 제주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지금으로서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생이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에 있다. 극 중 도현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뿐, 그의 시간도 큰 문제없이 흘러가기는 한다. 다만 그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흘러가는 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한 인생의 일면에서 기인한다. 영화의 컷 전환이 생각보다 빠르고 급하게 이어지는 것에도 그런 심리가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굶어 죽더라도 연기는 연기인 거고, 돈은 돈인 거잖아."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명확한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그저 계속 걸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선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의 마지막 표정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힘이 조금 부쳐 보이기는 했지만 무력하게 느껴지지 않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언젠가 꼭 자신의 자리를, 연기로 다시금 자신을 표현해 낼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이 응원의 마음은 지금도 화면 바깥에서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맴돌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주고 싶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후회하지 않는 얼굴>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후회하지 않는 얼굴>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2.
후회하지 않는 얼굴
노영미 / 2023 / 극영화 / 26분
 
재경(강진아 분)은 인하(홍승이 분)로부터 남편 철우(이승현 분)가 친구 선우(주인영 분)와 연인 관계로 지내오고 있다는 이야길 전해 듣게 된다. 초대로 방문한 인하의 작업실에서 마주하게 된 불쾌한 진실. 그 감정은 오롯이 재경의 것이어야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상식 밖의 모습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아직 그것도 눈치채지 못했냐며 이런 이야기를 먼저 전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이 불편하다는 듯한 인하의 태도는 아주 가벼운 수준이다.
 
노영미 감독의 연출작 <후회하지 않는 얼굴>에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재경과 그의 남편 철우, 친구 선우, 아는 선배 인하 그리고 미지의 인물인 희영(김니나 분)까지. 다만 영화는 다른 모든 인물을 재경과 면대면의 상태로 등장시킨다. 딱 한 장면에서 인하와 희영이 함께 재경을 마주하기는 하지만, 의미적으로 특별히 다른 목적을 갖지는 않는다. 각각의 장면에 항상 머무는 재경과 대비하며 차례를 바꾸어가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표정. 영화는 그들이 가진 일관된 표정 하나를 극의 한가운데에 놓고 이를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재경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위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확인해야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불륜의 당사자인 두 사람은 그저 뻔뻔한 표정과 행동으로 재경 앞에 선다. 자신은 진실한 사랑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고 그저 속이고 있어 미안했다는 친구 선우와 그저 실수였을 뿐이니 이해해 달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남편 철우의 모습. 재경은 이기적이기만 한 그 태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기대되는 행동이나 태도, 말과 표정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그에 조금도 부합할 생각이 없다. 영화가 지속적으로 재경의 얼굴을 들여다보지만 특정한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영화가 그녀의 표정을 처음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다. 의문의 인물인 희영과 재경이 마주하는 순간에 비로소 어떤 표정 하나가 떠오른다. 그 위에 놓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자신의 모든 순간을 이 한 장면만을 위해 나아왔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이라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의 감정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얼굴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겁한 이들에게도 떠오르지 않던 그 표정을 재경이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봄 안에서>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봄 안에서>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봄 안에서
이주은 / 2023 / 극영화 / 5분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한 인물을 비추는 화면 하나가 뽀얗게 초점이 나간 채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창문을 뒤로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난 문학 선생님(이상훈 분)은 학생들에게 시 한 편을 읽어준다. 박목월 시인의 '봄비'다. 이제 수업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학생들은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선생님을 주시하는 프레임의 시선. 여전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꿈결 같기도 하다.
 
영화 <봄 안에서>는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초단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짧은 러닝 타임 속에서 고정된 카메라 한 대의 시선으로 자신이 담고자 하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 작품에서 필요한 것은 빼곡한 대사도 번잡한 움직임도 아니다. 그저 화면 위에 놓아둔 몇 가지 장치를 관객들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른함 속에 감춰진 무엇 하나가 단조롭기만 할 법했던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의 정점은 화면 앞에 놓인 인물인 선생님에 의해 이끌어지던 극의 움직임이 화면의 시선에 해당하는 프레임 바깥의 인물로 옮겨가는 순간에 있다. 졸음을 깨우는 듯한 선생님의 행동으로 인해 카메라의 존재가 어떤 인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작은 번뜩임은 수업 종이 울리고 외화면으로부터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존재(백지훈 분)로 인해 오롯이 추동한다. 계절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던 꽃봉오리처럼 영화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읽어주던 시인의 '봄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용히 젖어드는 / 초가(草家) 지붕 아래서 / 왼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이 영화 속, 보이지 않는 이의 마음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봄 안에서. 흐릿하던 창문 한편에 그간 기다려왔던 선명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잠결의 사랑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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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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