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블루> 스틸컷

영화 <미드나잇 블루>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미드나잇 블루>
한국 / 2022 / 20분
감독: 이다나

깊은 밤, 딸 예리(김노진 분)가 술에 취해 길에 널브러져 있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 화정(이언정 분)은 급히 차를 몰고 나선다. 핸드폰에서 자신의 번호까지 지운 채로 집을 나갔던 예리. 그런 딸이 뭐가 좋아서 이렇게 찾아 나서는지 알 수가 없다. 현장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타고 나갔던 차는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알 수도 없이 만취가 되어 인사불성인 그녀.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한 채로 바람을 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남자친구는 죽어도 싸다는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한다. 신고자로부터 딸을 어떻게 키웠길래 저렇게 나다니냐고 모진 말까지 듣지만 할 말이 없는 화정. 밤 사이 딸 예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어디까지 감추고 숨겨줄 수 있을까? 그 대상이 단순히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조금은 더 특별한 단어로 묶여있는 경우라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복잡해진다. 영화 <미드나잇 블루>는 여기에 놓인 질문과 대답의 경계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딸의 지난밤 행적 앞에서 엄마는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존재가 된다. 조건 없는 사랑과 강인한 책임감 뒤로 파고드는 어두운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이다나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그르게 수습하는 이야기'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고 있다.

딸의 자동차 옆에서 발견한 남자와 머리 뒤로 피를 흘리며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은 그의 상태. 술에 취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딸을 뒤로하고 마주한 상황 앞에서 화정은 홀로 수습해 보고자 노력한다. 딸이 정신을 잃은 시간, 그 공백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든 메우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딸의 미래는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 신고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딸의 잘못을 덮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되는 데까지만 해. 너무 열심히 하니까 일을 망치잖아."

영화는 그녀가 하나의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의 이면에 또 하나의 설정을 감춰놓는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많은 부분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빚진 마음이다. 이 설정은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파편처럼 영화 곳곳에 던져져 있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을 존재의 타협할 수 없는 양면이 위 대사 속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조각들이 하나가 되어 극의 마지막에서 합쳐지는 순간, 딸은 왜 엄마에 대한 미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또 엄마는 왜 그런 딸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쉽게 놓지 못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미드나잇 블루. 완전히 검지도 않고, 그렇다고 밝은 빛이 맴돌지도 않는 오묘한 색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영화가 드러내는 영상 속 컬러감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두 모녀의 관계를 표현하기에도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스러우면서도 어둡고 고독한 색의 의미가 두 사람이 지나온 과거를 대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미드나잇 블루> 스틸컷

영화 <미드나잇 블루>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소망어린이집 근무안내서>
한국 / 2021 / 20분
감독: 김민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뒤로 하고 한 여성이 어린이집으로 들어선다.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신입 선생님 나리(임선우 분)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환해야 할 어린이집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묘하다. 청각적으로는 분명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만이 화면을 감싼다. 첫 만남부터 날이 서 있는 듯한 선배 교사(고유 분)의 태도는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을 한 번 더 짓누른다. 아이들에게조차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그녀는 근무안내서와 비상연락망만 나리에게 던져주고 자리를 떠나버린다.

영화 <소망어린이집 근무안내서>는 보호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일부 아동 보육 시설의 문제와 실태를 공포라는 장르로의 치환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김민지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근무안내서와 라디오를 인물과 적극적으로 연계시키며 후반부에서 떠오를 사건의 핵심을 감추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서스펜스는 두 지점에서 획득된다. 선배 교사의 행동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나리의 모습과 역시 영화가 보여주는 어린이집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여길 관객들의 불안하고 의구심 넘치는 심리다. 영화는 자신의 안팎에 놓여 있는 두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극의 뼈대를 완성시킨다.

"최근 한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극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 인물 가까이가 아니라 인물로부터 떨어진 곳에 두고자 한다. 가령 라디오 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이면에 존재하고, 통원 버스의 사고 소리는 인물의 등 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식이다. 특히 핵심이 되는 사건과 관련된 일들일수록 더욱 그런데 이는 문제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 대신 은폐와 변명으로 일관하려는 어른들의 태도를 비춰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이런 표현 방법은 곧이어 뒤따르는 현실이 반영된 장면, 정확한 규명을 요구하는 부모를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다가가 묻는다.

마무리를 부탁한다며 급하게 먼저 퇴근하는 선배 교사와 아직 하원을 하지 못한 듯한 네 명의 아이들, 이 상황을 신임 교사인 나리가 홀로 떠맡게 되면서 영화는 그간 자신이 감춰왔던 하나의 장면과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첫 출근과 자세히 읽어볼 틈이 없었던 근무안내서와 흘러나오던 라디오의 내용,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교통사고. 영화는 과거와 대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간축에 옮겨 놓음으로써 중심 사건에 미스터리한 지점을 만들고, 영화의 마지막 지점에 놓인 아이들의 손 여러 개는 모든 엇갈린 이야기를 한데 모아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잘 쌓아 올려진 뼈대 위에서 모든 지점에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은 역시, 이 영화 속에 그려지고 있는 일부 선생님(어른)의 모습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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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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