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에 열린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가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조연상(조인성), 신인여우상(고민시), 음악상(장기하), 인기스타상(조인성)까지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모가디슈>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던 류승완 감독은 올해 <밀수>를 통해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밀수>를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조성민 부사장은 "요즘 한국영화가 위기라는데 <밀수>가 청룡 작품상을 받은 걸 보니 위기가 맞나 봅니다"라는 자조 섞인 수상소감을 건넸다. 하지만 대중지향적이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영화 <밀수>는 51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고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호연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청룡 작품상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영화였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신작을 만들면 당연하다는 듯 성수기에 영화가 걸리는 감독이 됐지만 류승완 감독도 <부당거래>까지는 흥행을 보장하던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충무로 입성 초기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고 그 결과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한국영화 대표 감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 특유의 색깔은 두 남자의 진한 땀냄새가 나는 그의 세 번째 상업영화 <주먹이 운다>에서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3번째 상업영화였던 <주먹이 운다>는 전국 172만 관객을 동원했다.

류승완 감독의 3번째 상업영화였던 <주먹이 운다>는 전국 172만 관객을 동원했다. ⓒ 쇼이스트(주)

 
류승완 감독의 오늘을 있게 한 '류승완 사단'들

류승완 감독은 최신작인 <모가디슈>와 <밀수>에서 조인성이라는 특급스타를 캐스팅했고 <베를린>에는 한석규와 하정우, 전지현이 동시에 출연했다. 이제 류승완 감독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특급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도 함부로 거절할 수 없는 스타감독이 됐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도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신작을 선보였던 데뷔 초기에는 소위 '류승완 사단'으로 불리던 제작진과 배우들이 단골로 작품에 참여해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1996년부터 영화계에서 일했고 1997년 류승완 감독과 결혼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류승완 감독과 가장 가까운 '류승완 사단'이다. 강혜정 대표는 2006년 <짝패>부터 <밀수>까지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든 영화를 제작했다. 설립 초기 류승완 감독에 대한 의존이 다소 심했던 외유내강은 201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영화의 제작에 뛰어들어 2018년 <너의 결혼식>, 2019년 <엑시트>와 <사바하>, 2021년 <인질> 등을 흥행시켰다.

1990년 <장군의 아들>에서 무술배우 출연을 시작으로 1995년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부터 무술감독을 맡았던 정두홍 무술감독은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류승완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짝패>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 무술감독과 주·조연 및 카메오 출연을 병행했고 <부당거래>와 <베를린> <베테랑>에서는 출연 없이 무술감독만 맡았다.

배우 중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7살 터울 친동생 류승범이 '류승완 사단'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한 류승범은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 <베를린>에서 주연을 맡았고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와 극장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단 <베를린> 이후 최근 4편의 영화에는 류승범이 출연하지 않았다.

류승범처럼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없지만 류승범 이상으로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배우가 바로 안길강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류승완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고 류승완 감독이 작품을 준비하면 안길강도 자연스럽게 몸을 만들었을 정도로 서로 간의 신뢰가 대단했다. 하지만 안길강 역시 <베테랑> 카메오 출연을 끝으로 최근 세 작품인 <군함도>와 <모가디슈> <밀수>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길거리 복서와 소년원 복서의 양보 없는 대결
 
 최민식(왼쪽)과 류승범은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촬영을 통해 마지막 경기장면을 완성했다.

최민식(왼쪽)과 류승범은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촬영을 통해 마지막 경기장면을 완성했다. ⓒ 쇼이스트(주)

 
2002년 상업영화 데뷔 후 <피도 눈물도 없이>와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통해 경쾌한 느낌의 액션영화를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은 2005년 세 번째 장편 상업영화 <주먹이 운다>를 통해 변신을 시도했다. <주먹이 운다>는 더 내려갈 곳 없는 절망의 끝으로 떨어진 두 남자의 처절한 대결을 그린 복싱영화다. 스포츠 영화 특유의 박진감이나 주인공의 승리를 통해 느껴지는 액션 쾌감 따위는 <주먹이 운다>에서 느낄 수 없다.

최민식이 연기한 강태식 캐릭터는 실제 일본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매를 맞는 일을 하는 길거리 복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냈을 정도로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현재는 사업 실패로 집도 차압 당하고 이혼위기에 놓인 위기의 40대 가장이라는 설정을 더해 강태식 캐릭터를 만들었다. 극적인 설정에 최고의 배우 최민식의 열연이 더해진 강태식은 중년 이상의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한편 류승범이 연기한 유상환은 방황하는 청춘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젊은 관객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당시엔 통칭 '레게 머리'로 불리던 드레드 헤어로 나왔던 초반은 물론이고 머리를 짧게 잘랐던 '교도소룩'마저 찰떡 같이 어울렸던 류승범은 스타일만큼 어울렸던 연기를 통해 유상환의 방황과 노력을 잘 표현했다. 특히 자신에게 음식물을 투척하는 터줏대감 권록(김수현 분)의 귀를 물어뜯은 후 눈을 뒤집으며 웃는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

강태식과 유상환의 이야기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던 영화는 후반부 두 사람의 경기를 보여주며 클라이맥스를 향한다. 태식과 상환은 6라운드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은 처절한 혈전을 펼치고 경기는 상환의 2-1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에 일부 관객들은 굳이 경기 결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불만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태식과 상환이 아들과 할머니를 안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막을 내리는 영화의 엔딩에 불만을 가진 관객은 거의 없었다.

<주먹이 운다>에서 상환이 복싱을 시작하고 배우는 충의대 복싱부는 지난 1984년 인천소년교도소에서 창단해 1986년 천안소년교도소로 자리를 옮겨 운영됐다. 충의대 복싱부는 2003년 프로복싱 최초 재소자 신인왕을 발굴하는 등 복싱 유망주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재소자들이 직업훈련을 선호하면서 지원자가 급격히 감소했고 결국 법무부 지침에 따라 2008년 말 폐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천하의 최민식마저 압도한 천호진의 카리스마
 
 천호진이 연기한 상철은 진심 어린 충고를 통해 방황하는 태식의 멘탈을 잡아준다.

천호진이 연기한 상철은 진심 어린 충고를 통해 방황하는 태식의 멘탈을 잡아준다. ⓒ 쇼이스트(주)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나문희 배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인공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 역으로 영화 활동을 활발히 했다. <주먹이 운다>의 상환 할머니 역시 그 시기에 출연했던 영화로 상환 할머니는 사고로 아들을 잃고 손자를 걱정하다 쓰러진다. 할머니는 귀휴를 나온 상환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지만 상환의 경기날짜를 기억하고 손자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다찌마와 리>를 통해 류승완 감독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였던 임원희는 강태식이 투자한 돈을 날리는 복싱계 후배 오원태 역을 맡았다. 오원태는 태식이 생계를 위해 거리의 복서로 나서자 이를 방송국에 제보한 후 태식의 출연료를 훔쳐 도망갈 정도로 질이 나쁜 후배다. 하지만 태식이 아들을 위해 신인왕전 출전을 결심한 후에는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사채업자 용대(오달수 분)에게 돈을 빌려 태식의 훈련과 경기를 돕는다.

천호진은 태식이 거리에서 매를 맞아가며 돈을 벌 때 근처에서 우동집을 하면서 태식의 편의를 봐준 상철을 연기했다. 상철은 태식이 돈을 버는 동안 태식의 짐을 맡아 주고 돈을 아껴야 하는 태식을 위해 끼니마다 우동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태식은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후 잔뜩 취해 상철에게 행패를 부리는데 이때 상철은 "내가 복싱은 잘 몰라도 조지 포먼이 마흔다섯에 챔피언 된 건 안다. 이제 갓 마흔 넘은 놈이..."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지난 9월 최장암 투병 끝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배우 변희봉은 상환이 속한 충의대 복싱부의 감독 박사범을 연기했다. 박사범은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진중한 자세로 방황하는 상환을 복싱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박사범 역시 여느 복싱 지도자들처럼 다혈질의 급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상환의 경기가 끝난 후에는 여러 가지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토로하며 교도주임(안길강 분)을 난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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