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린 북>이었다. 불세출의 코미디 <덤 앤 더머>로 유명세를 얻은 패럴리 형제 중 형인 피터 패럴리의 작품으로, 코미디 연출자는 정극 연출을 하지 못하리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소위 씨네필이라 불리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선 이 영화가 다른 어느 명작에 대응하는 작품이란 해석이 나오곤 했다. 다름 아닌 1990년 작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두 영화가 여러 면에서 서로를 떠올리게 하는 닮은꼴이란 이야기였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본 <그린 북>의 줄거리는 이렇다.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던 1960년대 초 미국이 배경으로, 유명 피아니스트가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8주 동안 남부지역 투어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8주간의 동행이다. 짐작하다시피 영화는 성공한 피아니스트와 별 볼 일 없는 운전기사라는 신분차를 떠나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우정을 태동하게 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런 영화를 일러 흔히 버디무비라 하는데, <그린 북>은 그 전형이라 해도 좋겠다.
 
물론 영화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탄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재능 있는 흑인이고, 그를 태운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는 밑바닥 삶을 사는 백인이다. 이들의 신분이 남부라는 여행지의 특수한 환경에서는 완전히 뒤집어지니, <그린 북>의 매력 중에선 뒤집힌 상황이 주는 미묘하며 아이러니한 재미 또한 상당하다 할 것이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포스터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포스터 ⓒ 엔케이컨텐츠

 
<그린 북>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이제 주인공인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이야기를 할 차례다. 영화가 만들어진 1990년은 어느덧 30년 넘게 훌쩍 지난 오래 전으로, 이쯤이면 한 때의 명작이라 하더라도 본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의 최신영화를 먼저 보고 소개하는 작업만큼이나 과거 만들어진 잊히긴 아까운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것 또한 영화평론가로서의 중한 업이라 해도 좋겠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은 데이지(제시카 댄디 분)다. 일흔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로, 영화의 시작부터 자동차 사고를 낸다. 고집이 세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데이지는 사고가 새로 바꾼 자동차 때문이라며 이제는 운전을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아들의 걱정을 들은 채도 않는다.
 
하지만 아들 불리(댄 애크로이드 분)는 어떻게든 데이지가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새로 바뀐 차량의 기어를 잘못 넣을 만큼 나이든 어머니가 혹여 사고라도 당할까 두려워서다. 가업을 크게 일으켜 주에서 손꼽히는 사업가로 자리 잡은 불리다. 제가 직접 운전을 할 여유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고용하기로 한다. 소개를 받아 고용한 이가 바로 흑인 운전기사 호크(모건 프리먼 분), 데이지처럼 유태인이었던 어느 판사를 기사로 오래 모셨다고 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엔케이컨텐츠

 
깐깐한 할머니와 넉살 좋은 운전사의 만남
 
붙임성도 좋고 일머리도 있는 호크다. 자동차 또한 잘 다루지만 불리는 여간 걱정이 많은 게 아니다. 호크 때문이 아니라 제 어머니 데이지 때문이다. 제가 직접 운전을 못한다면 전차를 타고 시내를 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기사를 보낸들 쓸모가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급한 호크는 무작정 데이지 집으로 가고, 여러 어려움 끝에 데이지를 차에 태우는 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영화는 데이지와 호크의 남은 인생 전체에 걸친 여정을 보여준다. 흔히 버디무비가 다른 이와 함께 낯선 곳으로의 여정을 떠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라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속 둘의 여정이란 그저 공간이 아닌 삶 전반이 되는 것이다. 데이지가 일흔에 시작하여 아흔이 넘기까지 둘은 우정을 이어가며, 아마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기 전까지 그 관계를 유지할 테다. 그렇다면 이 또한 여행이 아니냐고 이 특별한 버디무비가 묻고 있는 듯하다.
 
어느 여정이 그러하듯 영화엔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를테면 호크를 기사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온갖 트집을 잡고 싶은 깐깐함으로 그의 애를 먹이는 데이지와 특유의 넉살로 난관을 잘 헤쳐 나가는 호크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처음엔 운전습관이며 다니는 길을 못미더워하던 데이지는 나중엔 호크가 집에 있던 통조림을 훔쳐 먹었다고 의심하기도 하는데, 영화는 호크가 이 모두를 절묘하게 극복해나가는 모습으로써 긴장감을 유발한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엔케이컨텐츠

 
화장실도 못가던 흑인의 삶
 
영화 속에 여행이 아예 없지도 않다.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남부 다른 주로의 여정이다. 아흔이 넘은 데이지의 삼촌 생일을 맞아 그녀는 호크와 함께 파티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매년 참석해온 자리지만 아들인 불리가 바빠 시간을 낼 수 없는 탓이다. 다행히 호크가 있으니 둘은 일찍 길을 떠나 저녁때까지 도착하기로 결정한다.
 
전반적으로 누구의 감정에 깊이 돌입하지 않는 무심한 연출답게 여행에서 마주한 여러 일 또한 그저 흘러가듯 묘사된다. 그럼에도 낯설게 튀어나온 듯한 몇몇 장면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를테면 차를 타고 가다 잠시 쉬며 식사를 하던 둘은 당혹스런 순간을 맞이한다. 왜 이런 비싼 차에 검둥이가 웬 말이냐며 호크에게 다가온 건 다름 아닌 경찰들이다.

차에 타고 있던 데이지가 제가 주인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주춤하며 신원만 확인하고 둘을 보내준다. 그러면서도 차 뒤에 대고선 유태인 할멈에 흑인 기사가 어떠하니 하며 말을 붙인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 흑인이 마주했던 일이 어떠한 것이었을지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뿐인가. 데이지가 휴게소에 들러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 난 뒤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크가 잠시 차를 세워야겠다고 말한다. 갈 길이 멀고 길까지 잘못 들어 늦을까 걱정하던 데이지가 호크를 막아 세운다. 오줌을 좀 참고 계속 차를 몰라는 이야기다. 호크는 잠시 고민하다가는 이내 정차하고 오줌조차 제 마음대로 못 누어야겠느냐며 차를 내린다. 데이지가 그에게 아까 화장실에 가지 않고서 뭘 하였느냐고 따져 묻자 호크가 하는 말, 휴게소 화장실에 흑인은 출입금지란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스틸컷 ⓒ 엔케이컨텐츠

 
차이를 넘어 우정이 싹트는 시간
 
이처럼 영화는 당대 미국 남부에 횡행하던 차별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어느 하나의 문제를 파고들어 부각하는 대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흑인에 대한 차별을 일깨우는 것이다. 물론 당대 미국사회에 유태인에 대한 차별 또한 없지 않은 탓에 데이지는 차츰 호크가 느끼는 소외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갖기에 이른다. 그 결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만찬 설교 자리에 참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더 자극적인 연출에 골몰하는 요즈음 영화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연출법을 고수한다. 1시간30분 남짓의 짤막한 러닝타임 동안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담담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어느 사건이나 상황에도 깊이 매달리지 않고 인생의 어느 굴곡이었다 술회하듯 담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들의 20년 동안 취사선택되었을 몇몇 장면들을 통하여 관객은 영화에 나오지 않은 데이지와 호크의 삶이며 관계가 어떠했으리라고 자연히 내다볼 수 있다. 즉 영화는 관객에게 데이지와 호크라는 인간, 나아가 그들의 삶을 알도록 이끈다.
 
<그린 북>이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는 상황 가운데 당대 부조리한 시대상을 그려냈다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또한 같은 이야기를 담는다. 한 영화는 깊이 들어가 직면하고, 다른 영화는 멀리 떨어져 관조한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자세를 고민하게 하고, 어느 인간을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사회를 비난한다는 점에선 닮아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관계가 우아한 고용인과 천박한 피고용인의 관계로 끝나지 않은 것처럼, 백인 마님과 흑인 운전사의 관계 또한 성격 파탄난 백인 할머니와 무던한 흑인의 모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인간과 관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는 점에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명작의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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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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