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경직돼 있다. 미국과 수교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적극 받아들이며 개혁을 추진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오늘의 모습이 좀처럼 연상되지 않는다.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집권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유례 없는 3기 연임에 성공하며 국가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란 정치적 구호는 문화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듯, 문학과 영화 등 중국에서 태어나는 작품 또한 이 시대 중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30여 년 전, 냉전 종식과 중국 내 자유주의의 확대는 중국사회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중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장이머우와 첸카이거 같은 거장의 등장, 또 홍콩영화판에서 전성기를 맞은 중국계 배우들의 활약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그들의 면면은, 또 그들의 변화된 모습은 반대로 오늘날 중국의 경화된 사회상이 어떤 수준인지를 짐작케 한다.
 
최근 개봉한 장이머우의 <만강홍: 사라진 밀서>나 첸카이거의 <장진호>같은 영화를 보자면 이들이 시진핑 체제와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이 뿐인가. 성룡을 비롯한 여러 홍콩 스타들 또한 중국 자본으로 강성한 중국의 면면을 알리는 애국영화를 거듭 찍어내는 것이 오늘날 중국 영화판이다. 거장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은 이들이 자유보다는 통합을, 민주보다는 성취를 이야기하는 상황은 반대로 중국 내 소장 작가들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한다.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포스터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포스터 ⓒ BoXoo 엔터테인먼트

 
중국을 휩쓴 로맨스와 만나다
 
그러나 모두가 체제에 영합하는 하나의 중국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념에 매몰되어 애국영화가 판을 쳤던 한국의 지난 역사에서 도리어 멜로와 에로영화가 사회상에 비판적인 색채를 일부 드러냈듯이, 중국 영화 가운데서도 그와 같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도 소개돼 중국의 감성을 일깨운 작품 <최호적아문>의 작가 바웨창안의 소설 <암련귤회생남>이란 작품이 있다. 바웨창안의 작품답게 역시 풋풋한 로맨스 소설로,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끈 뒤 중국 텐센트TV에서 38부작 드라마로 다시 제작해 관심을 모았다. 이 같은 인기를 업고 작품은 전 세계로 배급되는 영화로 제작되기에 이르는데, 그 작품이 바로 <너를 부르는 시간>이다.
 
한국에선 무명이나 다름없는 황빈과 치우성이 메가폰을 잡고, 청춘스타 신윈라이와 장쉐잉을 내세워 원작을 극화했다. 원작의 중추를 이루는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얼개로 자본주의에 노출된 인민의 삶과 빈부격차, 경쟁, 성공 등 중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문제들을 자연스레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 BoXoo 엔터테인먼트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뤄즈(장쉐잉 분)의 어린시절 부터 시작된다. 어느 비오는 날, 뤄즈는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일이 늦어진다며 일찍 집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쉬워하는 뤄즈에게 대신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개구리 우비를 사주겠다고 덧붙인다. 불행히도 그 통화가 뤄즈와 아버지의 마지막 기억, 아버지는 그날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후 뤄즈의 어머니는 공장장을 상대로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하며 끝이 없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인가, 뤄즈의 어머니는 뤄즈의 손을 잡고 공장장이 나타날 것 같은 어느 결혼식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공장장의 아내가 나와 있지만, 공장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뤄즈의 어머니는 공장장의 아내와 한 판 설전을 벌이지만, 공장장의 아내는 저들이 할 만큼 했다며 야멸차게 돌아설 뿐이다. 두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뤄즈는 어느 소년과 처음 만난다. 성화이난(신윈라이 분)이라 불리는 그 아이와 뤄즈의 만남은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다. 둘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지만, 볼 일을 마친 뤄즈의 엄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식장을 빠져나오기 바쁘다. 저 애가 누군지 아느냐, 다시는 같이 놀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건 물론이다.
 
영화는 어느덧 둘의 고교시절로 넘어간다. 뤄즈가 다니는 학교에는 1등부터 꼴등까지 석차를 좌악 적어서는 게시판에 붙여 학생들에게 보도록 한다. 모범생인 뤄즈의 등수는 10위, 그런데 학교 관계자가 오더니 맨 윗줄에 다른 학생 이름을 적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학생들의 석차는 한 등수씩 내려가고 뤄즈는 11등이 된다. 맨 윗 자리는 전학생인 성화이난, 뤄즈는 바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챈다.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 BoXoo 엔터테인먼트

 
짝사랑을 넘어 온사랑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뤄즈가 성화이난을 남몰래 흠모하는 짝사랑 이야기로 흘러간다. 훤칠한 외모에 집안도 잘 살고 성격이며 성적까지 좋은 그다. 교내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를 좋아하지만 그는 이성교제엔 별 관심이 없는 듯 고고하기만 하다. 남는 시간엔 피아노를 치는 그를 남몰래 훔쳐보는 뤄즈, 이내 그녀는 그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그의 습관 따위를 따라하며 제 마음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옥상의 벽 하나를 두고 둘이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 속 명대사를 벽에 분필로 적고, 다시 답을 하고, 그 답에 답을 이어가는 이들의 얼굴 가린 대화는 그 또래의 풋풋함과 어우러져 흔치 않은 매력을 발산한다. 이들의 미묘한 마음 교환이 이어질 듯 엇갈리는 가운데, 영화는 다시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둘이 우연처럼 운명인 듯 다시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짝사랑을 하고 짝사랑을 포기했다 마침내 사랑을 이루지만 다시 위기를 겪는 일련의 이야기는 흔한 청춘로맨스 영화처럼 관객들에 다가선다. 역경이 격할수록 사랑 또한 귀해지는 법, 이들의 관계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많은 관객에게 관심과 애정을 자아낼 수 있을 듯 절절한 순간이 없지 않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어여쁜 외모에 더하여 이제는 수준급으로 올라온 중국영화의 기술적 수준 또한 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영화가 특히 인상적인 건 이로부터 드러나는 사회상이다. 학생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 짓고 그로부터 대입의 기준을 삼으며, 학벌을 통해 계급을 나누는 중국의 성과주의 체제가 한국의 경쟁은 아무것도 아닌 양 치열하다. 영화는 석차 1등을 차지한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도열한 조회 가운데 단상에 올라 하는 연설을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처음 1등을 한 성화이난이 단상에 올라 하는 말은 모두의 예상을 깨는 내용이라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영화 <너를 부르는 시간> 스틸 이미지 ⓒ BoXoo 엔터테인먼트

 
로맨스 사이 엿보이는 중국이란 사회
 
그는 제게 입학시험은 거대한 산과 같고 학생의 임무란 그 산을 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를 넘어 인생 전체를 바라보자면 눈앞의 가파른 산도 하나의 야트막한 언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러니 대입까지 남은 길고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돌아보고 나아가자고 말이다. 그는 앞으로 펼쳐진 미래가 저 또한 두렵다며, 그럼에도 함께 나아가자고 진지하면서도 소탈하게 털어놓는다.
 
반면 뤄즈가 온갖 노력 끝에 1등을 하여 단상 위에 선 순간이 있다. 그녀는 모두가 도열한 가운데서 앞서 성화이난의 연설에 대응하는 연설을 한다. 대학 입학시험은 우리 인생에서 그저 눈앞을 가리는 언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언덕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는 그 언덕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이다. 그녀는 후퇴할 길 없는 전쟁 가운데 노력하여 이 자리에 선 것이 바로 자신 뤄즈라며, 실패에 핑계를 대지 않고 성공할 방법을 찾겠다고, 어떠한 장애물도 두렵지 않으며 포기만이 제가 두려워하는 일이라고 선언한다.
 
성화이난과 뤄즈의 연설, 그리고 이어진 극도의 경쟁과 살아남은 이들에게 열리는 기회, 다시 대학졸업으로부터 갈라지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중국 내의 성과지상주의며 능력지상주의, 또 그러한 시각으로부터 국경을 넘어 다른 사회를 바라보고 있을 저들 중국인의 인식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한 편의 멜로영화가 도리어 그들의 역사며 사회를 전면적으로 다룬 장이머우나 첸카이거의 영화보다도 사회상을 잘 드러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국경을 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뤄즈와 성화이난, 또 관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 이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인들을 우리와 다른 괴상하거나 무례한 무엇으로 편협하게 이해하는 마음을 잠시 치워두게 된다. 그로부터 그들과 우리 안에 공통으로 깃든 사람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 편의 영화가 인간과 삶을 더 넓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는 뜻일 테다. 심지어 풋풋한 그 시절 낭만적 사랑까지 담겼다면야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너를부르는시간 바웨창안 황빈 치우성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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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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