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 KBS

 
2010년 중후반 조선업계는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하지만 최근 조선업계는 수주가 늘어나며 호황을 맞고 있다. 최근 10년 만에 최대 수주를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일할 사람이 없어서 수주 물량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왜 그럴까?

지난 10일 방송된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경남 거제의 출근길 풍경으로 시작한 이날 방송에서는 왜 조선소나 건설 쪽에서 숙련공이 사라지는지를 추적했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4일 해당 회차를 연출한 박영미 PD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박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10년 만에 호황 맞은 조선업, 그 이면을 봐야한다

- 방송을 끝낸 소회가 어때요?
"우선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숙련공 부족과 제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야 해서, 이 큰 이야기를 다 다룰 수 있을까 걱정했었어요. 특히 현장에서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었고 모두가 아는 얘기였잖아요. 이 뻔한 이야기를 왜 <추적 60분>에서 지금 해야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작진들은 <추적 60분>이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자동화 시대에 제조업과 숙련공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의 메시지가 시청자분들께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 숙련공 소멸로 인한 제조업 문제는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요?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은 '한국의 뿌리 산업'이고 또 수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현장에서 숙련 기술로 일하는 걸 3D 업종이라고 부르며 기피하는 추세죠. 기능마저 자동화로 대체되는 등 여러 이유로 숙련공들이 사라지고 제조업은 쇠퇴하고 있어요. 뿌리가 없는 나무는 있을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혁신과 아이디어도 그걸 실현시킬 숙련 기술과 제조업이 없다면 '날지 못하는 비행기'입니다. 자동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숙련공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취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나요? 공부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일단 숙련공이 필요한 분야인 조선업, 건설업, 제조업 등에서 숙련공 부족 실태에 대한 기사와 자료 수집을 시작했어요. 근데 자료 만으로는 현장에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다 느끼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발제안을 만들기 전에 무작정 시흥-안산 공단 및 구로 공단을 혼자 카메라 들고 돌아다녔어요."

- 경남 거제의 출근길 풍경으로 시작했던데 왜 이렇게 구성하셨나요?
"처음 이 아이템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조선업계가 10년여 만에 호황을 맞았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배를 못 만들고 있다'는 뉴스였어요. 현장은 어떤 상황이길래 사람이 없어 배를 못 만들고 있다는 건지 궁금했고요. 현장 이야기를 들으러 조선업의 상징 도시인 거제도로 내려갔습니다. 실제로 출근길에서 노동자분들이 체감하시는 바를 저희에게 알려주시더라고요. '지금 언론에서는 수주량이 많아서 호황이라고는 하는데 그 이면을 봐야 한다'고 알려주신 분들이 많았고 여기서부터 취재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느꼈던 그 의아함을 시청자분들도 공감해 주시길 바라서 조선소 출근길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 실제로 가본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현장은 장기 불황을 견디고 다시 호황이 왔으니 무척 반기는 분위기이긴 했어요. 수주가 이제 많아지고 있으나 크게 기뻐하지만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숙련공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 적은 임금 문제가 아직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업체 측에서도 숙련공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고 있었죠."

- 조선소가 호황이지만 숙련공에 대한 대우는 달라지지 않은 건가요?
"네. 조선소의 수주 물량이 많아져서 '호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거기서 일하는 숙련공들에 대한 임금이라든가 대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조선업계의 본질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죠. 발주사, 원청과 하청업체, 재하청 업체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점차 떨어지는 단가에 맞춰 노동자들의 임금도 결정되기 때문이에요. 이전에는 저가 수주로 인한 적은 임금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고부가가치선인 LNG, LPG선 위주의 수주가 많아지며 상황이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선박 수주의 특성상 처음에 주문받았을 때 계약금 등 선수금 외에는 제작 후 납품을 해야 그 전체 금액 잔금을 받는 구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박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수개월, 몇 년은 걸리는 작업인데 중간에 재료비가 갑자기 상승하기도 하고 변수가 많지요. 인건비도 계속 드는데 선박 제작 비용은 납품을 넘긴 이후에 들어오고요. 그러니까 업체들의 입장은 호황인 것처럼 보여도 현금을 굴리기 어렵다, 임금을 예전만큼 올려줄 수 없다는 거죠."

-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임금을 더 많이 주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돈을 더 줄 테니 오라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숙련공들의 반응은 달랐어요. 조선업계가 불황일 때, 숙련공은 가장 먼저 손쉽게 정리 당했어요. 미래를 담보 받지 못한 채 떠나야 했던 옛 직장에서 다시 미래를 약속하며 돌아오라고 한다면, 누가 그 약속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평당 28만 원이 4만 원으로... 단가 후려치기의 문제점
 
 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 KBS

 
- 현재는 빈 자리를 외국인 인력들이 채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숙련공들이 떠난 빈 자리를 외국 인력들이 대체하고 있죠. 그렇지만 기술력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한국의 현장에 맞는 기술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쉽게 대체되지 않고 있어요. 외국 인력의 숫자만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거죠. 현장에 맞게 재교육도 시켜야 되고 또 한국어도 가르쳐야 되고요. 숙련공이 되어도 비자 만료로 5년 후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끝이잖아요. 현장의 어려움은 단순히 인력이 부족하니 외국 인력으로 채우면 된다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 비슷한 사례로 건설 현장도 숙련공이 없으니, 부실이 늘어나는 걸까요?
"건설 현장의 부실 아파트 또한 숙련공이 없어지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숙련공이 사라지는 이유를 찾다 보면 조선소처럼 하청의 하청 구조, 저가 수주, 단가 후려치기 문제가 고질적인 원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더 낮은 단가로 일을 시키니까 임금을 깎는 법을 택하게 된 거죠. 과거에 비해 숙련 기술이 있는 분들이 건설 현장을 찾지 않고 값싼 비숙련인들과 외국인 분들이 대체하고 있고요. 부실 아파트 논란도 필연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방송에서 하청에 재하청으로 28만 원짜리 단가가 4만 원까지 내려온다고 나오더라고요.
"2021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철거 현장 붕괴 사고는 평당 공사비가 28만 원짜리 공사였다고 해요. 근데 이 공사를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해서 싸게 더 빠르게 하려고 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평당 공사비가 4만 원까지 내려가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숙련공을 쓰고 싶어도 그 가격에는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 제조업 인력을 육성하는 특성화고도 함께 취재했는데, 특성화고 분위기는 어떤가요?
"제가 취재한 서울공고는 과거엔 정말 공부를 잘하는 명문 학교였어요. 그만큼 찾는 학생들도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지원하는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셨어요. 학생수는 줄었지만 모두들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있었어요. 사실 조선소, 건설 현장, 제조업 현장에서 숙련공 선배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취재하고 (학교에) 갔던 상황이라 한편으로 씁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이런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제조업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숙련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서 특성화고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 엔딩에 천현우씨 목소리를 담으셨는데 어떤 의도였을까요?
"천현우씨는 지난 12년 동안 용접과 관련된 일을 해온 청년공으로 그간의 경험을 <쇳밥일지>라는 책으로 써낸 작가이기도 해요. 또 엔딩에 천현우뿐만 아니라 '마니또'라는 안산-시흥 지역의 특성화고 졸업생 모임 분들의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그 이유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전까지는 현장에서 숙련공이 부족하고 그래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짚어줬다면, '청년들은 왜 현장을 떠나는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가'를 담고자 했습니다."

사람의 노동 없이는 4차 산업과 자동화도 없다
 
 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의 한 장면 ⓒ KBS

 
- 숙련공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도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해결점이 있는지 (방송에서) 짚고 싶었어요. <추적 60분>은 탐사 보도, 시사 프로그램이잖아요. 모든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인 하청의 재하청 구조에 대해서 다루긴 했는데 막상 숙련공이 사라지는 현실을 잘 해결하는 사례는 없더라고요. 장인의 나라라고 불렸던 일본이나 마이스터의 나라 독일도 사람이 없어서 외국 인력들을 불러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숙련공이 사라져가고 제조업이 부실해지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위기가 된 거죠.

4차 산업 혁명, 로봇과 인간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등 다소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보다 현실적인 해결책 제시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고 제조업에 큰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풀며 화두를 던지는 정도로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보다 깊은 구조적인 문제들과 앞으로의 해결책에 대한 부분은 후속 취재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 방송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도 많을 것 같아요.
"방송에서는 숙련공이 부족한 현장 상황과 숙련공이 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숙련공이 없으면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했어요. 단적으로 '적은 임금과 열악한 대우'를 그 이유라고 짚었는데요. 그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청구조의 문제와 최저임금, 노동시간의 문제 등 노사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에 풀지 못한 문제점들이 있었어요. 숙련공 부족 현상을 야기했던 구조적인 문제점과 해결책 제시를 날카롭게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은 뭔가요?
"선박, 아파트, 키오스크, 첨단 의료기기, 휴대폰 등 모든 우리 생활 곳곳에는 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뿌리산업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라는 것도 사람의 노동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요. 저희가 현장에서 느낀 이 점을 시청자분들도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일하고 있는 숙련공들과 숙련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학생의 노고가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합니다,.
박영미 추적60분 숙련공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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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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