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12.12 군사쿠데타를 정면으로 다룬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한다. <서울의 봄>에서는 '1억 관객 배우' 황정민이 캐릭터 이름만 들어도 누구를 모티브로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군사반란의 수괴 전두광 역을 맡았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방송됐던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에서는 류승범이 은퇴한 블랙 요원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가지고 한국에 온 프랭크를 연기하며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황정민과 류승범은 1970년생과 1980년생으로 10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은 비슷하다. 실제로 두 배우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에서 연기호흡을 맞췄는데 첫 번째 작품은 바로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였다. 하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아있는 작품은 역시 황정민과 류승범이 각각 광역수사대 반장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연기했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다.

황정민과 류승범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부당거래> 사이에도 함께 출연했던 또 하나의 작품이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은 황정민이 주연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할 때 개봉한 영화라 황정민과 류승범의 연기대결을 홍보 포인트로 삼기도 했다. 바로 황정민이 마약계 거물을 잡기 위한 집념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형사, 류승범이 황금구역을 관리하는 마약 중간판매상을 연기했던 최호 감독의 2006년작 <사생결단>이었다.
 
 <사생결단>은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에 개봉했음에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다.

<사생결단>은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에 개봉했음에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다. ⓒ CJ ENM

 
 마약중독자가 된 추자현의 연기변신

<야인시대>의 시라소니를 연기한 배우이자 번역가로도 유명한 조상구는 1986년 영화 데뷔작이었던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조상구 역을 맡은 후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활동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상구 외에도 <장군의 아들2>의 송채환, <여우야 뭐하니>의 고준희 등 작품 속 배역 이름을 활동명으로 사용하는 배우들이 종종 있다. 추자현 역시 이들처럼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이 활동명이 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1996년 SBS의 하이틴드라마 <성장느낌 18세>로 데뷔한 추자현은 1999년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보이시한 대학생 '추자현' 역을 맡았다. 그전까지 본명인 추은주로 활동했던 추자현은 <카이스트>에서 연기했던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가지며 당시의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활동명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2002년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차양순(장나라 분)의 의리 있는 친구 송보배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랑소녀 성공기> 이후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던 추자현은 2006년 영화 <사생결단>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자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사생결단>에서 잘 나가는 명품 판매점 사장에서 마약에 중독돼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영 역을 멋지게 소화한 추자현은 5개 영화제의 신인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신인상과 여우조연상을 모두 휩쓸기도 했다.

<사생결단> 이후 중국에 진출한 추자현은 2008년 <미인도>와 2009년 <실종>에 출연하며 간간히 국내 활동을 이어갔지만 어느덧 주 활동무대가 중국으로 바뀌었다. 추자현은 한국에서 잘 나가는 소위 '한류스타'의 자격으로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새로 데뷔하는 신인 배우로 출발해 회당 1억 원의 출연료를 받는 톱배우로 성장했다. 2017년에는 2살 연하의 중국 배우 우효광과 백년가약을 맺었고 2018년 아들을 출산했다.

결혼 후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간간이 근황을 알리던 추자현은 작년 세 편의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국내 시청자들을 만났다. 봄에 방송된 JTBC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에서는 호랑이처럼 자녀를 엄격하게 키우는 엄마 변춘희를 연기했고 가을에는 <작은 아씨들>에서 진화영 역을 맡아 흡인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는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의 아내로 특별 출연했다.

미치광이 형사와 마약 판매상의 공생과 배신
 
 도진광 형사(왼쪽)와 이상도는 형사와 범죄자의 관계임에도 때로는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공생했다.

도진광 형사(왼쪽)와 이상도는 형사와 범죄자의 관계임에도 때로는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공생했다. ⓒ CJ ENM


영화에서는 형사들이 출소 후 손을 씻었거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전과자들을 정보원으로 두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도둑놈 마음은 도둑놈이 제일 잘 아는 법"이라는 영화 <투캅스>의 대사처럼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반경은 결국 같은 범죄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생결단>은 '마약특별구역'으로 지정된 부산의 유흥가에서 벌어지는 형사와 마약 중간판매상의 공생과 배신을 다룬 영화다.

<사생결단>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주연을 맡은 황정민과 류승범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다.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던 두 배우는 <사생결단>에서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악역 대 악역'의 대결구도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긴장시켰다. <사생결단>은 극장가의 비수기라 할 수 있는 2006년 4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2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특정 캐릭터가 사투리를 쓰는 것은 이질감이 없지만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사투리가 서툰 배우가 나오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에서도 마산이 고향인 황정민이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정우의 사투리 연기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류승범과 대구 및 경북이 고향인 추자현과 이도경 등의 사투리 연기는 다소 어색했다고 느낀 관객들도 있었다.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같은 대형 해수욕장이 있음에도 외지인들이 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라는 이미지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물론 2001년 영화 <친구> 이후 부산도 친근한 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부산 100% 올로케'의 <사생결단>은 1998년 다소 어두웠던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실제로 <사생결단>은 촬영장소 섭외와 결정에만 약 1년의 시간을 들여 관객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부산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최호 감독은 1998년 유지태와 김하늘 주연의 <바이준>으로 데뷔한 후 2002년 채팅 게임을 소재로 한 독특한 멜로영화 <후아유>를 선보였다. 2006년 범죄 누아르 <사생결단>을 연출한 최호 감독은 2008년 조승우와 신민아 주연의 <고고70>으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최호 감독은 2014년 이정재와 신하균, 이성민이 출연한 <빅매치>가 흥행에 실패한 후 아직 차기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황정민의 동료형사로 출연한 '부산어 마스터'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정우는 부산 배경의 <사생결단>에서 형사 역할로 출연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정우는 부산 배경의 <사생결단>에서 형사 역할로 출연했다. ⓒ CJ ENM

 
1930년대에 데뷔해 196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이름을 날린 고 김승호의 아들인 배우 김희라는 1998년 한지승 감독의 <찜> 이후 활동이 뜸하다가 <사생결단>으로 8년 만에 영화에 복귀했다.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을 했던 김희라는 <사생결단>에서 이상도(류승범 분)의 삼촌이자 은퇴한 마약중개업자 이택조를 연기했다. 김희라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베테랑 연극 배우이자 <와일드카드>의 퍽치기 대부 도상춘 역으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이도경은 <사생결단>에서 도진광(황정민 분)이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마약계의 거물' 장철을 연기했다. 도진광은 총에 맞은 이상도를 바다에 빠트리면서까지 힘들게 장철을 잡았지만 이미 검찰과 내통한 장철은 차 안에서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를 보고 분노한 도진광은 총으로 장철을 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응징'을 가했다.

영화 <바람>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부산경남을 상징하는 배우가 된 정우도 <사생결단>에서 도진광의 후배 김형사 역으로 출연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정우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이었고 <사생결단>에서도 김형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황정민과 더불어 현지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배우였던 정우는 영화 중간중간 의외로 많은 분량의 대사를 소화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사생결단 최호감독 추자현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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