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너와 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에 상영되며 호평받았다.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로 인기를 얻었으나, 2021년 학폭 논란 이후 촬영한 박혜수의 첫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혜수는 <다음 소희>(2023)로 라이징 스타 반열에 오른 김시은과 연기해 복귀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김시은은 <다음 소희>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활달한 소녀 그 이상을 그려냈다.
 
<너와 나>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절친 이상의 감정에 환희와 두려움을 느끼는 두 소녀의 오해와 갈등, 사랑을 담고 있다. 모두가 들떠 있는 여행 전날, 세미(박혜수)는 자전거에 치여 병원에 입원한 하은(김시은)을 보러 왔다가 석연치 않은 감정을 쌓아간다.
 
오늘따라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다.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깨자마자 눈물이 흐르는 슬픈 꿈을 꾼 세미. 친구 하은이 죽는 꿈이었다. 이후 학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불길한 기운이 다가오는 가운데 병원에 들러 일련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금방 풀어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하루 내내 지속되며 세미를 괴롭히고 급기야 하은과 다툼을 유발한다.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함께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다리를 다친 하은. 수학여행비도 넉넉지 못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스치는 번뜩이는 생각.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비를 마련하면 어떨까? 중고 사이트에 캠코더를 올려 사겠다는 사람과 만나 값을 치를 일만 남았지만 돌연 하은은 다음에 가고 싶다고 선언한다.
 
풀 죽은 세미는 하은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자친구가 생긴 걸까? 내가 모르는 비밀을 품고 있는 걸까? 하은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아파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다. 하은에게 첫 번째가 자신이었으면 좋겠고 특별한 존재였으면 더 좋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마음 졸이며 혼자 끙끙 앓던 세미는 놀라운 결심을 하게 된다. 오늘이 가기 전에 전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몽환적 분위기, 선명한 주제들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통해 특정 장소나 시간을 알 수 없게 설정했다. 제목 '너와 나'의 흘려쓴 글씨체를 보면 마치 한 단어처럼 보인다. 몽환적인 뿌연 필터는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된다. 관객을 수학여행 전날 속으로 끌어들여 놓고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순수한 마음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녀들의 사춘기를 섬세하게 담아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상을 향한 진심과 애정이 전달된다. 사람, 동물, 사물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장착했다. '사랑의 힘'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정도다. 사랑스러운 십 대 소녀를 연기하는 두 배우의 케미뿐만 아닌 조현철 감독의 연출 역량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과 십 대 퀴어 소재를 결합은 상상조차 못한 독특한 연결이다. 죽음과 사랑이 항상 주변에 떠돌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랑이 사치가 된 시대, 사랑은 오랜 유물로 취급되는 메마른 분위기와 옅어지는 모호함을 뚫고 '사랑하자'는 외침, 위로받을 온기를 담고 있는 예쁜 영화다.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래서인지 계속되는 불안 상황을 의도해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고등학생의 싱그럽고 순수한 장난과 마음이 교차되면서 끊임없이 죽음을 암시한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 테이블 끝에 걸쳐있는 위태로운 유리컵, 친구가 죽는 꿈, 2시 35분에 멈춰있는 시계, 장례식장의 화환, 계단에서 종이 태우는 여자 등. 곧 일어날 불행을 예고하는 메타포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 다양한 상징을 쫓아가다 보면 잊은 줄 알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은 이 사건을 매일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떠올릴 매개가 <너와 나>가 될 것 같다. 극한 아픔을 그저 전시하지 않고 담담하게 위로하는 배려가 유려한 미장센과 음악으로 빛나고 있다.
너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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