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지만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족, 친구, 지인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 맺는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나쁜 일도 있기에 인생은 살아가야만 하고, 살아갈 만하다.
 
혼자만 잘 살면 될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도움의 손길을 꾸준히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은 더욱 따뜻해진다는 걸 깨닫는다.
 
복권 당첨자가 금세 알코올중독자가 된 이유
  
 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싱글맘 레슬리(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거액의 복권 당첨금을 탕진했다. 주변에 축하주를 돌리고 작은 식당을 차리고 싶다고 말했던 게 어색해질 만큼 다 잃었다. 기쁨에 취해 그날의 영광은 과거 속으로 영영 멀어져 버렸다. 유흥으로 모든 돈을 써버렸고 가족에게 버림받게 된다. 억세게 운 좋은 행운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모텔비까지 연체해 쫓겨난 레슬리는 염치없지만 제임스(오웬 티그)의 집으로 향한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꼬맹이일 때 보고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아직 어리지만 제 앞가림을 하는 아들을 보니 대견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다른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제임스는 여기서 지내는 건 좋지만 술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지만 실망감을 안긴다. 앞으로 잘할 거라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믿었던 제임스와 완전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레슬리는 친구 낸시(앨리슨 제니)를 만나 소원한 감정을 들춘다. 가족 같았던 친구에게 제임스를 맡기고 떠나 큰 상처를 냈었다. 낸시는 레슬리를 곱게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둘은 다툼을 벌이게 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문전박대 당한다.
 
거리를 배회하던 레슬리는 모텔 근처에서 하룻밤 노숙한다. 다음날 마음씨 좋은 모텔 주인 스위니(마크 마론)를 만나 일자리를 구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삶의 전환점을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스위니의 도움과 응원을 통해 스스로를 구할 힘을 얻게 된다. 늦었지만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밑바닥 인생, 마지막 기회도 놓칠 건가?
  
 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레슬리에게>는 굴러들어 온 행운을 그대로 차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아들과 엄마와 비슷한 설정이 낯설지 않다.
 
<힐빌리의 노래>가 마약 중독자가 된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라면, <레슬리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의 시선을 따라 처절하게 전개된다. 몇 번이고 재기할 기회를 맞지만 술 때문에 망가지는 무지함을 보인다. 술은 이성을 앗아갔고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마저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아들의 햇살 같던 유년기를 망친 대가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잘 곳을 찾아 푸석한 오늘과 마주해야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버렸고 미래는 아득하기만 했다. 지난날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과거를 돌이키면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또 술을 찾았다. '그냥 될 대로 돼라'는 자포자기는 제일 빠르고 쉬운 처방전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게 되고 처량한 신세가 한탄스러워 한두 잔씩 늘어나 삶을 좀 먹는다. 외롭고 쓸쓸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라는 갖은 이유로 음주를 정당화한다. 십중팔구 자신은 중독자가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반복하게 된다. 술을 마신 쾌감에 중독되어 의지는 더욱 약해진다.
 
알코올 중독은 한 잔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단 한 잔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니, 재발은 걷잡을 수 없이 독이 된다. '한 잔은 너무 많지만 천 잔은 너무 적다'라는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의존자 모임) 관련 책자 속 글귀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재발하면 아무리 술을 퍼마셔도 만족하지 못해 더 깊은 중독에 빠진다.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 있으면 금주는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서는 어려우나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알코올 중독이다. 레슬리는 모텔 주인 스위니의 따뜻한 보살핌에 차츰 회복된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다시 맞출 마지막 갱생의 기회인 거다. 많이 힘들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정신을 붙잡고 힘겹게 싸워간다.
 
영화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이야기다. 하지만 독립영화부터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력을 덧붙여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영화부터 시작해 단역, 조연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변신해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높게 평가한다. 비슷한 캐릭터를 통해 다작하기보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 같은 모습은 '레슬리'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날개를 달아주었다.
레슬리에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