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말투는 차분했고,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 이후에도 끝까지 마음을 다하겠다 다짐한 듯 말이다. 영화 <너와 나>는 그만큼 박혜수라는 사람에겐 특별해 보였다. 18일 오후 서울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을 찾은 박혜수는 영화 속 세미처럼 고스란히 마음을 꺼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섣부른 위로가 상처는 되지 않을지, 아름다운 세미와 하은(김시은)의 관계가 혹여나 누군가에겐 미워보이진 않을지. 박혜수는 촬영 전에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두 고교생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아우르는 주제 의식은 결코 가볍거나 쉽게 다룰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너와 나>를 퀴어에 추모의 마음을 담은 영화로만 소개할 수 없는 이유다.
 
관계 속에서 세미를 찾아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조현철 감독은 박혜수 측에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한다. 연기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단편 영화를 연출했던 그의 첫 장편 영화가 될 <너와 나>를 두고 박혜수는 넓은 차원에서의 사랑을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참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감독님이 엄청 세심하게 고민한 게 느껴졌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도 정말 아릅답게 보였다. 꼭 참여하고 싶었다. 제 개인에게도 치유과정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작품에 말대로 박혜수는 세미가 됐다. 본인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끼며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반영했다고 한다. 영화 속 대사도 숱한 리허설 과정에서 배우들이 직접 내뱉는 말들을 살려낸 결과였다. 그렇게 현실감 있는 세미가 탄생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지금까지 친한 무리가 있는데 그 무리에 하은이 같은 친구도 있다. 왜 그때는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토라지고, 시시콜콜한 것들로 웃고 그러잖나. 졸업 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더라. 거기서 나오는 제 모습을 많이 가져오려 했다. 친구들 앞에서 제 말투, 행동, 감정을 관찰했다.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제 모습들 말이다.
 
촬영은 한 달 정도 했는데 그 전에 리허설을 일주일에 세 번씩 했다. 리허설을 안 할 때는 사무실에서 감독님, 시은 배우랑 수다 떠는 시간을 가졌다. 그땐 별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 영화에 도움이 됐더라.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마음이 담겼고, 그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소재나 주제면에서 어렵게 다가온 건 사실이었다. 혹여나 추모의 마음이 빛바래는 건 아닐지, 자기 감정만 내세우는 세미가 미워 보이진 않을지 배우 입장에선 걱정할 만한 것들이었다. 박혜수는 내심 사랑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위로 메시지도, 세미와 하은의 감정도 모두 사랑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연기하면 할수록 제겐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제가 놓치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사랑을 많이 찾게 됐다. 가족에게조차 표현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제 마음들 말이다. 여기에 더해 꼭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 수 있겠더라. 내가 아닌 타인, 다른 대상에게까지 그 사랑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아는 시간이었다."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진심 담은 영화의 힘
 
그래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이 참여하는 연극을 봤고, 자신의 마음을 꾸준히 곱씹었다. 촬영지가 안산이라는 점도 박혜수에겐 특별했다.
 
"유가족 어머님들의 눈을 마주치며 연극을 보는데 제가 먼저 울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펑펑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정말 수많은 감정이 밀려왔고, 뭔가 큰 사명감도 들기 시작했다. 촬영 당시를 기억하며 말로 표현하기가 조심스럽다.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미안하면서도 그립기도 한 복잡함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비칠지도 감히 예상하면 안 될 것 같다. 다만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
 
영화제나 시사회 때 관객분들의 마음을 편지로 받은 적이 있는데 아, 우리의 의도가 잘 받아들여졌구나 실감할 때가 있어서 참 감사했다. 전 이 영화에 담긴 진심들이 관객들께 충분히 닿을 거라 믿는다.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영화는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으니까 많은분들이 보고 같이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도 이 영화가 남긴 것은 커 보였다. 학교폭력 폭로 이슈로 한창 마음 고생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수사 과정에서 고소인 측의 무고죄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쉽게 토로하지 못하고 앓던 당시에는 개인에게 큰 시련이었다. 무엇보다 장편 데뷔인 조현철 감독이나 스태프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던 상황이었다. 박혜수는 "그래서 이 영화로 구원받은 느낌"이라 표현했다.
 
"제 안에 단단하게 사랑을 주거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인지할 힘이 없을 때 이 영화를 만났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에 참여했고, 실제로 큰 사랑을 받으며 촬영했다. 정말 내 주변에 많은 사랑이 있고, 사랑의 형태도 참 다양하구나 왜 그동안 깨닫지 못했나 싶었다.
 
한 관객분이 제게 편지를 주셨다. '영화 속 세미를 사랑한다. 박혜수도 사랑한다. 세미이자 혜수 언니는 작은 흙에서 자신도 모르게 틔워낸 싹 같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감사한 말이다. <너와 나> 이후로 책임감 비슷한 게 생긴 것 같다. 힘든 일이 많고, 각박해진 세상이지만 끊임 없이 사랑을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예전엔 멋지고 좋은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5년 전, 그러니까 이제 막 박혜수가 <스윙키즈>란 영화로 데뷔했을 때였다. 배우로 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때 당찬 각오를 전하던 때보다 훌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박혜수도 웃어 보이며 정말 많이 변했다고 화답했다. "그땐 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눈앞에서 많은 게 흐려졌던 것 같다"며 그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지만, 그만큼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다. 미안함,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도 나름 터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선은 개봉하는 <너와 나>가 많은분들께 와닿았으면 좋겠다. 수사도 잘 진행돼서 마무리된다면,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 영화에 참여하신 분들에 대한 저의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순리대로 모든 일도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박혜수 너와나 조현철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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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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