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실사영화로 구현할 수 없는 게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사영화 주인공들은 지구인과 외계인, 동물, 로봇 정도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다르다. 무한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애니메이션은 창작자의 상상에 따라 그 어떤 것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공개된 애니메이션들만 봐도 실사에선 차마 구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CG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3D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는 장난감(<토이스토리>)과 개미(<벅스라이프>), 괴물(<몬스터 주식회사>), 물고기(<니모를 찾아서>), 자동차(<카>), 청소로봇(<월-E>)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기쁨, 슬픔, 분노 등 인간의 감정이 주인공이었고 올해 개봉한 <엘리멘탈>에서는 불과 물 등 원소들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디즈니와 픽사의 후발주자인 드럼웍스는 1994년에 설립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함께 만들다가 지난 2004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자회사로 독립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슈렉>과 <쿵푸팬더> 정도를 제외하면 라이벌을 자처하는 디즈니·픽사에 비해 크게 힘을 쓰지 못했는데 2010년에 개봉한 이 작품이 희망으로 떠올랐다. 2010년과 2014년, 2019년에 걸쳐 3편까지 제작됐던 3D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였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세 편의 극장판으로 16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세 편의 극장판으로 16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주)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기상천외한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디즈니·픽사처럼 드림웍스 역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소재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개미가 주인공이었던 <개미>를 시작으로 드림웍스 최고의 효자 <슈렉>의 주인공은 녹색괴물이었고 <쿵푸팬더>는 판다곰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2016년에 개봉한 <트롤>에서는 아예 인형이 주인공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드림웍스에서도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1998년 12월에 개봉했던 <이집트왕자>는 <개미>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였던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를 원작으로 하는 <이집트 왕자>는 발 킬머와 랄프 파인즈, 미셀 파이퍼 등 화려한 성우진과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으며 더욱 화제가 됐다.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과 함께 비평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은 <이집트왕자>는 2000년 프리퀄인 <이집트 왕자2: 요셉 이야기>가 제작되기도 했다.

2003년에 개봉한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마지막 2D 애니메이션으로 역시나 브래드 피트와 캐서린 제타 존스, 미셸 파이퍼 등 스타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하지만 6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신밧드>는 세계적으로 8000만 달러 흥행에 그쳤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다만 한국에서는 2003년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해 전국 130만 명을 동원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3년에는 선사시대 원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크루즈 패밀리>가 개봉했다. 당시 드림웍스는 <가디언즈>와 <피바디> <터보>의 흥행성적이 연이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위기에 빠져 있었는데 <크루즈 패밀리>가 5억 87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며 기사회생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엠마 스톤, 라이언 레이놀즈가 성우로 참여한 <크루즈 패밀리>는 지난 2020년 속편이 개봉했다.

2017년에는 <마다가스카>를 만들었던 톰 맥그래스 감독이 말라 프레이지 작가가 쓴 동화를 원작으로 독특한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를 선보였다. 알렉 볼드윈과 토비 맥과이어, 스티브 부세미 등이 목소리 연기를 한 <보스 베이비>는 5억 27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과 함께 작품성도 인정받으며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선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픽사의 '역대급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코코>였다.

흥미롭고 유쾌한 전개와 교훈적인 엔딩까지
 
 히컵(왼쪽)은 굶주린 드래곤 투슬리스를 생선으로 유혹하면서 길들인다.

히컵(왼쪽)은 굶주린 드래곤 투슬리스를 생선으로 유혹하면서 길들인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주)

 
사실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제목만 보면 '드래곤'이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물론 여러 종류의 드래곤들이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드래곤의 이야기'가 아닌 '드래곤을 길들인 소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제로 <드래곤 길들이기>는 투슬리스라는 전설의 드래곤과 교감해 친구가 되는 히컵(제이 바루첼 분)이라는 바이킹 소년이 주인공이다.

1억 6500만 달러의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드래곤 길들이기>는 세계적으로 4억 9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드림웍스의 전작 <몬스터 vs. 에일리언>이 본전치기에 그쳤던 아쉬움을 달래주는 흥행이었다. 다만 같은 해 개봉해 애니메이션 최초로 10억 달러 흥행을 돌파한 <토이스토리3>와 7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억 4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슈퍼배드>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흥행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림웍스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관객들의 평가가 매우 높은 작품이었다. 미국의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99%와 관객점수 91%라는 매우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국내 포털사이트에서도 관객평점 9.33점으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지나 영화평론가 겸 동국대 교수는 <드래곤 길들이기>를 "<아바타>보다 신나는 3D 영화"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히컵과 투슬리스가 처음 비행에 성공하는 장면과 히컵이 아스트리드(아메리카 페레라 분)와 나누는 수줍은 첫 키스 등은 <드래곤 길들이기>를 대표하는 명장면들이다. 다만 히컵이 마지막 대결 이후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차는 장면은 몇몇 어린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동정이나 편견을 없애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이 담긴 <드래곤 길들이기>의 엔딩은 관객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림웍스 창립 20주년을 맞은 2014년 속편이 개봉했다. 여전히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드래곤 길들이기2>는 6억 2100만 달러로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을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9년에 개봉한 3편 역시 5억 2100만 달러의 수익으로 드림웍스의 효자상품임을 증명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TV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지만 극장판의 감동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타보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성우들 섭외
 
 히컵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제이 바루첼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성우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캐나다 배우다.

히컵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제이 바루첼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성우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캐나다 배우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주)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과 비교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화려한 성우진이다. 디즈니·픽사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문성우를 주로 쓰는 데 비해 드림웍스는 스타배우들을 성우로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림웍스의 대표 애니메이션 <슈렉> 시리즈에는 마이크 마이어스와 캐머런 디아즈, 에디 머피 등이 참여했고 <쿵푸팬더>에는 잭 블랙과 더스틴 호프만, 안젤리나 졸리, 성룡, 세스 로건 등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이에 비해 <드래곤 길들이기>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스타배우의 목소리 출연이 없다. 주인공 히컵 역의 제이 바루첼은 캐나다 출신의 배우 겸 성우로 <드래곤 길들이기> 이후 <마법사의 제자>에서 주인공 데이브 역을 맡았지만 기대만큼의 흥행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일부 영화 팬들은 2012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코스모폴리스>를 <드래곤 길들이기>와 함께 바루첼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한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로인 아스트리드는 원작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영화의 오리지널 캐릭터다. 겉으로는 다소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히컵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히컵이 자신을 드래곤에 태워 비행을 시켜줬을 때 "이건 납치한 벌이야"라며 히컵을 때린 아스트리드는 곧 "그리고 이건 나머지 몫이고"라고 말하며 히컵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스트리드의 목소리를 연기한 아메리칸 페레라는 올해 개봉한 영화 <바비>에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크리스 샌더스, 딘 데블로이스 감독 제이 바루첼 아메리카 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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