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주변의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서 내 삶이 다른 무엇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때가 있다. 내가 자주 굽는 삼겹살은 공장식 축산업체와 도축업체를 거쳐 가게까지 도달한 것이고, 거기엔 열악한 상황에서 근무하는 이주민 노동자의 피와 땀이, 축산폐수로 고통 받는 농장 인근 주민의 고통이, 때때로 땅 속에 묻히는 수많은 가축의 울부짖음이 배어든 것이란 사실을 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많은 것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테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청춘의 가장 값진 시절을 바쳐야 하는 징집 장병들의 수고로움, 낙후된 지역에 들어선 전력생산시설이며 송전시설의 위험부담, 도시에서 배출한 폐기물을 대신 묻고 태우는 지역의 고충 같은 것들 말이다. 도시는 누리고 지방은 희생하는 이 체계를 나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쓰고 시위현장을 지나치는 사람처럼 아무 잡음도 없다는 듯 누려왔던 일이다.
우리의 이 같은 삶이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 속 파란약을 삼킨 비겁한 이의 안락은 아닌가 의심될 때가 있다. 매달 몇 번 씩 삼겹살을 먹으면서도 돼지의 울음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분단된 휴전국에 살면서도 적병의 침공에 몸을 떨지 않는다는 사실이, 전기를 쓰면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발전소와 송전탑의 문제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민망과 창피를 넘어 비겁하게까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