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라 앤 썬> 포스터

영화 <플로라 앤 썬> 포스터 ⓒ CJ CGV

 
존 카니는 특별한 존재다. 그 이름만으로도 그가 만드는 것이 어떠할지 짐작되는 인물이다. 마치 우리집 앞에 가게를 두고 있는 만두명장 남궁돈 선생이라거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의 귀여니 작가라거나 같은 리그 투수들의 평균구속보다 20km/h 쯤은 느린 공을 던지던 유희관 선수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들의 특별함은 만두 앞에 남궁돈을, 소설 앞에 귀여니를, 직구 앞에 유희관을 붙이게 했다. 존 카니도 그러해서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존 카니 영화라고 부른다.
 
영화계 전체를 통틀어도 그런 존재가 많지는 않다. 우리는 액션영화와 멜로영화, 서부극과 누아르를 구분하지 사람의 이름으로 장르를 나누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존 카니와 같은 지극히 희귀한 존재만이 그와 같은 영광을 얻는다.

이를테면 찰리 채플린과 성룡, 오우삼과 왕가위, 스티븐 스필버그와 크리스토퍼 놀란, 한국에는 이창동과 봉준호, 마동석 같은 이가 그런 류로 꼽힐 것이다. 말하자면 채플린 영화와 놀란 영화, 봉준호 영화와 마동석 영화란 말이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를 오해 없이 오간다는 뜻이다.
 
존 카니가 바로 그런 존재다. 사람들은 카니의 영화를 맞이하며 제 귀가 즐거울 것을 기대한다. 적절한 낭만과 적절한 즐거움 속에 매력적인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저 유명한 <원스>로 성공을 거머쥔 뒤 <비긴 어게인>과 <싱 스트리트>로 제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린 카니다. 카니의 영화엔 언제나 음악이 중심에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꿈에 대한 열망,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절로 배어나는 이야기가 섬세하게 펼쳐졌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카니보다 잘 푸는 감독이 없었으니 카니의 영화를 사람들은 존 카니 영화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플로라 앤 썬> 스틸컷

<플로라 앤 썬> 스틸컷 ⓒ CJ CGV

 
오랜만에 찾아온 또 한 편의 존 카니 영화
 
<플로라 앤 썬>은 또 한 편의 존 카니 영화다. 제 고장인 더블린과 어느덧 제게 익숙해진 미국 캘리포니아를 함께 담아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인공은 오늘만 사는 듯이 사는 화끈한 싱글맘 플로라(이브 휴슨 분)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져 아들 맥스(오렌 킨런 분)를 홀로 키운다. 사고뭉치로 자란 맥스가 못마땅할 때도 많지만 그녀도 모범적인 엄마라고 할 수는 없단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플로라와 맥스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언제나처럼 보모 일을 하고 퇴근하던 플로라의 눈에 버려진 기타가 들어온 것이다. 플로라는 그 기타를 수리해 맥스에게 선물로 주려고 하지만 맥스는 기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들인 돈이 아까운 플로라는 저라도 기타를 쳐볼까 하여 인터넷에서 기타교습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플로라는 LA의 음악가 제프(조셉 고든 래빗 분)와 만난다.
 
처음엔 쉽지 않은 일의 연속이다. 플로라 자신부터 무엇을 열심히 해본 경험이 많지가 않다. 처음엔 술을 마신 채로 컴퓨터를 켰다가 선생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다행히 제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지만 그런 태도로는 변화다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들 맥스도 만만치가 않다. 이런저런 물건을 자주 훔친 그는 동네의 소문난 말썽쟁이다. 경찰은 자꾸 이런 식이면 맥스가 소년원에 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데도 맥스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엇나가니 가뜩이나 엄마노릇에 자신이 없는 플로라는 그저 답답해할 뿐이다.
 
 <플로라 앤 썬> 스틸컷

<플로라 앤 썬> 스틸컷 ⓒ CJ CGV

 
모든 변화는 음악으로부터
 
카니의 영화답게 모든 변화는 음악을 통해 찾아온다. 믿기 어려울 만큼 쉬운 변화라고 누군가는 비판할 수도 있을 테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삶이란 이 영화에서처럼 쉬운 탈출과 성장을 기대하기엔 지나치게 고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이런 가정에선 뿌리 깊은 오해와 불신, 분노와 잘못된 버릇들이 있게 마련인데, 영화 속 플로라에겐 마약은 이미 끊은 상태이고 술은 자주 마시긴 해도 중독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며, 재정적인 문제나 가족 간의 갈등도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음악으로부터 커다란 변화를 얻을 수가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가능하고, 사랑이며 우정의 복원 또한 마찬가지다. 플로라며 맥스와 같은 재능이 그리 흔하지는 않겠으나 분명히 어딘가에선 그와 같은 재능이 기회와 맞닥뜨리는 순간이 찾아오고는 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는 더블린과 LA를 오가며 플로라의 삶이 조금씩 화사해지는 광경을 담는다. 온라인 기타수업을 통해 플로라는 음악은 물론 제 삶을 알아가는 계기를 맞이한다. 실은 아들 맥스가 음악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음악을 매개로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전 남편(잭 레이너 분)과의 관계도 그럭저럭 이어지고, 인터넷 창 너머 제프와의 관계도 미묘한 인상을 던진다. 그 모두가 플로라의 삶을 조금쯤 활기차게 만들고, 그녀는 전보다 훨씬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에 이른다.
 
존 카니의 영화답게 <플로라 앤 썬>엔 매력적인 음악이 여럿 등장한다. 어쿠스틱 기타 교습의 특징을 살려 전보다는 훨씬 힘이 빠진 수수한 음악들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느낌 있는 음악들이 듣는 귀를 사로잡고, 조셉 고든 래빗이란 매력 있는 존재가 보는 이의 관심을 확실히 붙들어 놓는다. 이해는 깊어지고 가족은 단단해지며 개인은 성장하는 이야기를 대체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 가운데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음악까지 있다면야.
 
 <플로라 앤 썬> 스틸컷

<플로라 앤 썬> 스틸컷 ⓒ CJ CGV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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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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