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제임스 마스던은 2000년부터 세 편에 걸쳐 제작된 마블코믹스 원작의 <엑스맨> 오리지널 3부작에서 눈을 뜨면 안구에서 강력한 레이저가 발사되는 돌연변이 사이클롭스를 연기했다. 그리고 마스던은 2006년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끝내자마자 DC코믹스 원작의 <슈퍼맨 리턴즈>에서 클라크 켄트에게 여자친구 로이스 레인을 빼앗기는 '비운의 서브남주' 리처드 화이트 역을 맡으며 마블과 DC를 넘나들었다.

지난 2009년 라이언 레이놀즈는 마블 코믹스 원작의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해 총알도 막아내는 특수부대 '팀 X'의 멤버 웨이드 윌슨을 연기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DC코믹스 원작의 <그린랜턴:반지의 선택>에 출연했다. 하지만 'DC 확장 유니버스의 아이언맨'이 돼줄 것으로 기대했던 <그린랜턴>은 흥행에 참패했고 레이놀즈는 2016년 다시 마블로 돌아와 <데드풀> 시리즈에 출연하고 있다.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저마다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영화에 함부로 등장할 수 없다. 하지만 배우들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약속된 계약조건만 없으면 얼마든지 여러 회사의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 최근 DC 확장 유니버스에서 베트맨을 연기했던 배우 겸 감독 벤 애플렉도 마찬가지. 애플렉은 DC 확장 유니버스의 베트맨 역을 맡기 13년 전, 마블 코믹스 원작의 영화 <데어데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아쉬운 흥행성적 때문에 속편 제작이 무산됐던 <데어데블>은 2015년 드라마를 통해 부활했다.

아쉬운 흥행성적 때문에 속편 제작이 무산됐던 <데어데블>은 2015년 드라마를 통해 부활했다. ⓒ 드림맥스(주)

 
히어로 영화가 언제나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제작비의 압박만 없다면 흥행부담에서 가장 자유로운 장르 중 하나다. 일단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검증된 원작이 있어 각본을 쓰면서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고 물량만 대거 투입한다면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를 고르는 관객들의 눈이 까다로워지면서 흥행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는 슈퍼 히어로영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에 개봉했던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영화 <플래시>가 대표적이다. 2억2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플래시>는 약 1억 달러의 마케팅 비용이 더해지며 최소 6억 달러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영화가 됐다. 하지만 <플래시>는 2억6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에 그치며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손해를 본 작품'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 출범 후 좀처럼 실패가 없는 마블코믹스 원작 영화 중에서는 <판타스틱4>가 '흑역사'로 남아있다. 지난 2005년 20세기 폭스가 제작하고 제시카 알바와 크리스 에반스가 출연했던 <판타스틱4>는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2년 후 속편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이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폭스가 <판타스틱4>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판타스틱4>는 2015년 <크로니클>의 조시 트랭크 감독이 연출하고 <킹스맨> 시리즈의 매튜 본 감독이 제작, 제이미 벨과 마이클 B. 조던 등이 출연한 새로운 시리즈가 개봉했다. 하지만 1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2015년판 <판타스틱4>는 1억6700만 달러의 성적으로 흥행참패를 경험했다. <판타스틱4>의 판권을 회수한 마블 스튜디오는 오는 2025년 개봉을 목표로 <판타스틱4>를 MCU 세계관에 합류시킬 예정이다.

오리지널 시리즈를 시작으로 스핀오프였던 '울버린 트릴로지'와 세 편의 '비기닝 시리즈'까지 만드는 영화마다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꺼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바로 2019년에 개봉했던 <엑스맨: 다크피닉스>다.

2억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세계적으로 2억52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관객들의 외면을 당했고 <다크 피닉스> 이후 <엑스맨> 시리즈는 4년째 '개점 휴업' 상태다.

속편 대신 2005년 스핀오프 <엘렉트라> 제작
 
 <데어데블>의 두 주인공 밴 에플렉(오른쪽)과 제니퍼 가너는 지난 2005년에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데어데블>의 두 주인공 밴 에플렉(오른쪽)과 제니퍼 가너는 지난 2005년에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 드림맥스(주)

 
지금은 마블에서 판권을 회수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세 시즌에 걸쳐 드라마로 제작된 <데어데블>은 2003년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다.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은 <데어 데블>과 <고스트 라이더>를 연출했고 <엘렉트라>와 <고스트 라이더: 복수의 화신> 제작에 참여하면서 슈퍼히어로 영화, 특히 마블 코믹스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쪽으로 명성이 높다.

사실 '맹인 히어로' 데어데블은 슈퍼히어로로서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어린 시절 방사능 폐기물에 노출되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대신 나머지 감각들이 초인적으로 발달한 머독(벤 애플렉 분)은 복싱선수였던 아버지가 살해 당한 후 복수를 꿈꾸며 낮에는 변호사로, 밤에는 범죄와 싸우는 히어로로 이중생활을 한다. 데어데블은 초인적인 감각과 뛰어난 격투센스를 가지고 있지만 어벤져스 멤버들 같은 슈퍼파워가 없는 '인간적인 히어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데어데블>은 세계적으로 1억7900만 달러의 '어중간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속편제작이 무산됐다. 사실 존슨 감독은 빌런인 킹핀(마이클 클라크 덩컨 분)과 불스아이(콜린 패럴 분)를 살려 두면서 속편에 대한 여지를 남겼지만 관객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결국 데어데블 캐릭터는 12년이 지난 2015년 드라마 버전에서 찰리 콕스라는 새로운 배우에 의해 부활했다.

벤 애플렉은 지금도 인기스타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과 <진주만>에 연속으로 출연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데어데블>은 벤 애플렉이 배우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맡은 슈퍼히어로 역할이었는데 복면이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만이 컸다는 후문. 하지만 벤 애플렉이 연기했던 두 번째 히어로 캐릭터 역시 복면으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다니는 배트맨이었다.

<데어데블>은 아쉬운 흥행성적 때문에 속편제작이 무산됐지만 영화에 등장했던 데어데블의 여자친구 엘렉트라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 <엘렉트라>가 2005년 개봉했다. 제니퍼 가너가 엘렉트라를 연기했고 <데어데블>의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이 각본 작업에 참여한 <엘렉트라>는 43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초라하게 사라졌다. 심지어 카메오로 등장한 벤 애플렉의 출연분량은 본편에서 삭제됐다.

잔인한 살인청부업자 연기했던 콜린 파렐
 
 작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콜린 파렐은 <데어데블>에서 잔인한 살인청부업자를 연기했다.

작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콜린 파렐은 <데어데블>에서 잔인한 살인청부업자를 연기했다. ⓒ 드림맥스(주)

 
<데어데블>에서 히로인 엘렉트라를 연기한 제니퍼 가너는 <데어데블>을 통해 벤 애플렉을 만나 2005년 결혼식을 올렸고 2018년 이혼할 때까지 3명의 아이를 낳았다. 다만 영화에서는 엘렉트라가 중반에 불스아이에게 살해 당하면서 일찌감치 이야기에서 빠졌다. 원작에서 데어데블과 엘렉트라는 대학시절에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나름의 서사가 있지만 영화에서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놀이터에서 싸우다가 뜬금없이 눈이 맞아 연인이 됐다.

작년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를 통해 베니스영화제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콜린 파렐은 <데어데블>에서 표창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살인청부업자 불스아이를 연기했다. 불스아이는 목표물을 제거한 후 시체 위에 장미꽃 한 송이를 떨어트린 후 "불스아이(명중)"라고 외치는 '루틴'을 가진 킬러다. 하지만 불스아이는 영화 막판 역으로 데어데블에게 당해 경찰이 쏜 총에 양손이 뚫리며 체포됐다.

마블코믹스의 대표빌런 킹핀은 드라마 <데어데블>과 <호크아이>,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 여러 작품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다. 영화 <데어데블>에서도 데어데블 아버지의 원수이자 최종보스로 등장해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킹핀은 <아마겟돈>과 <그린마일>,<아일랜드> 등에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고 마이클 클라크 덩컨이 킹핀을 연기했는데 킹핀을 연기한 덩컨은 지난 2012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캐스팅이 탄탄했던 <데어데블>에서는 변호사 맷 머독의 파트너 변호사 프랭클린 넬슨 역으로 <아이언맨 1,2>,<정글북>,<라이온 킹> 실사판의 감독이자 MCU의 해피 호건으로 유명한 존 패브로가 출연했다. 후덕하고 친근한 인상으로 원작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았지만 비중이 꽤 큰 드라마와 달리 영화 버전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주인공의 친한 동료A' 정도로만 나온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데어데블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 밴 에플렉 콜린 파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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