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아이언맨2>에서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 분)의 비서로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첫 등장한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는 근육질의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어벤저스 멤버들 사이에서 흔치 않은 여성 히어로였다. 블랙 위도우는 2021년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 무비 <블랙 위도우>를 끝으로 MCU에서 하차할 때까지 8편의 MCU 영화(카메오 출연 제외)에 출연해 그 어떤 남성 히어로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마블에 블랙 위도우가 있다면 DC 확장 유니버스에는 원더우먼(갤 가돗 분)이라는 멋진 여성 히어로가 있다. 지난 2016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영화 시작 2시간 30분 만에 위기에 빠진 배트맨(벤 에플렉 분)을 구하며 등장한 원더우먼은 2편의 솔로 무비를 포함해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DC확장 유니버스는 <플래시>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원더우먼>은 아마존 여전사들이 등장하는 스핀오프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MCU의 블랙 위도우와 DC의 원더우먼이 여성 히어로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블랙 위도우와 원더우먼이 중심이 된 집단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오지 않았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지난 2000년 3명의 개성 있는 여성배우를 캐스팅해 3인 여성 히어로 무비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리부트가 되거나 속편이 나오기 힘든 영화가 된 <미녀 삼총사>였다.
 
 <미녀 삼총사>는 국내에서도 서울 관객 52만 명으로 흥행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미녀 삼총사>는 국내에서도 서울 관객 52만 명으로 흥행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감각적인 연출 돋보이는 뮤비 출신 감독

데뷔 초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던 맥지 감독은 감각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다가 2000년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미녀 삼총사>였다. 맥지 감독은 경쾌한 코믹 첩보액션 장르인 <미녀 삼총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감각적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93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미녀 삼총사>는 세계적으로 2억6400만 달러의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맥지 감독은 2003년 보슬리 역의 빌 머레이가 버니 맥으로 교체되고 데미 무어가 새로운 빌런으로 가세한 속편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를 이어서 연출했다. 흔히 속편은 <터미네이터>처럼 흥행성적이 급상승하면서 시리즈로 굳어지거나 <트리플X>처럼 흥행 참패하면서 그대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2>는 1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5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시리즈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졌다.

2006년 작은 규모의 영화 <위 아 마셜>을 연출한 맥지 감독은 2009년 2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유일하게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지 않은 <터미네이터4>는 3억71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대부분의 관객들로부터 '실패작'으로 평가 받은 <터미네이터: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의 4억3300만 달러보다 낮은 성적이었다.

맥지 감독은 2012년 크지 않은 규모의 코믹 액션 <디스 민즈 워>로 1억5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터미네이터4>의 악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하지만 2014년 뤽 베송 감독이 각본을 쓰고 케빈 코스트너와 엠버 허드가 출연한 액션영화 <쓰리데이즈 투 킬>이 5300만 달러 흥행에 그치고 말았다. 어느덧 맥지 감독은 <미녀 삼총사>를 만들었을 당시에 얻었던 '감각적인 연출력의 소유자'라는 명성이 많이 시들었다.

맥지 감독은 2017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호러 코미디 <사탄의 베이비시터>가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자와 감독을 겸하고 있는 맥지 감독은 2019년 넷플릭스의 하이틴 코미디 영화 <톨 걸>을 제작했고 2020년에는 <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콜>을 연출했다. 맥지 감독은 작년에도 <톨 걸2> 제작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성상품화 영화? 그래도 '선'은 지켰다
 
 <미녀 삼총사>의 세 주인공은 2003년에 개봉한 속편에도 나란히 동반 출연했다.

<미녀 삼총사>의 세 주인공은 2003년에 개봉한 속편에도 나란히 동반 출연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미녀 삼총사>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다섯 시즌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로 원제는 '찰리의 천사들(Charlie's Angels)'이다. <찰리의 천사들>은 찰리 타운젠드라는 부호가 설립한 탐정 사무소에서 세 명의 여성 탐정과 한 명의 남성 서포터가 활약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이를 지난 2000년 캐머런 디아즈와 드루 베리모어,루시 리우라는 떠오르는 여성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었고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제목이 <미녀 삼총사>로 변경됐다.

세 명의 여성 탐정이 얼굴을 본 적 없는 직장상사 찰리의 전화 지시를 받고 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본 설정은 드라마 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 버전의 나탈리, 딜런, 알렉스는 드라마판과는 다른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천사들이 위장잠입과 조사 등 탐정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위장, 잠입은 물론이고 변장과 해킹, 침투, 여기에 맨몸으로 총알을 피하는 '슈퍼히어로급 전투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세 배우가 선보이는 화려한 액션 연기는 <미녀 삼총사>의 최고 볼거리다. 드루 베리모어가 연기한 딜런은 2~3m의 근거리에서 빌런 에릭 녹스(샘 록웰 분)가 쏜 총알을 피해 몸에 걸치고 있던 이불을 깨진 유리조각에 걸어 건물 벽에 매달린다. 캐머런 디아즈가 연기한 나탈리 역시 보슬리를 구하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뒤에서 기습한 적들을 간단히 제압한 후 보슬리에게 농담을 던지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물론 <미녀 삼총사>는 흥행을 의식한 제작사의 의도가 엿보이는 지나치게 섹시한 의상과 주로 미인계를 이용하는 사건 해결방식 때문에 '성상품화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썩 틀린 지적도 아니지만 <미녀 삼총사>의 세 주인공은 애초에 생각이 자유롭고 발랄한 캐릭터들로 설정됐다. 또한 섹시함을 강조하는 와중에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으면서 북미에서 PG-13등급, 국내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2003년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이후 15년 넘게 세 편 소식이 없었던 <미녀 삼총사>는 지난 2019년 감독과 배우를 모두 교체한 새 시리즈가 개봉했다(국내 개봉명은 <미녀 삼총사3>였지만 세계관과 설정만 이어진 '리부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연출과 함께 보슬리를 연기했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한 <미녀 삼총사3>는 73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다.

어려운 액션 대거 책임지는 루시 리우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루시 리우는 <미녀 삼총사>에서 가장 어려운 액션연기를 도맡아 했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루시 리우는 <미녀 삼총사>에서 가장 어려운 액션연기를 도맡아 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미녀 삼총사> 캐스팅 당시 캐머런 디아즈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드루 베리모어는 <웨딩싱어>와 <에버 애프터>로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계 미국배우 루시 리우는 <미녀 삼총사> 출연 전까지 영화보다는 TV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던 배우였다. 실제 제작진은 알렉스 역에 안젤리나 졸리를 캐스팅하려 했다(졸리는 <툼 레이더> 촬영 일정 때문에 <미녀 삼총사> 출연을 고사했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많은 빈도의 액션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는 캐머런 디아즈도, 드루 베리모어도 아닌 알렉스 역의 루시 리우였다. <미녀 삼총사>를 통해 할리우드의 동양계 인기배우로 자리잡은 루시 리우는 2003년 <킬 빌>에서 야쿠자 두목 오렌 이시이 역을 맡으며 또 한 번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3월에 개봉했던 <샤잠!신들의 분노>에서는 귓속말로 상대를 세뇌시키는 빌런 칼립소를 연기했다.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사랑의 블랙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친숙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 빌 머레이는 <미녀 삼총사>에서 찰리가 내린 임무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모슬리 역을 맡았다. 천사들과 함께 요원 중 한 명으로 활약하는 드라마에서와 달리 영화에서는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빌 머레이는 1편을 끝으로 <미녀 삼총사>에서 하차했고 2편에서는 버니 맥이 보슬리 역을 맡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미녀 삼총사 맥지 감독 캐머런 디아즈 루시 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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