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튀르키예의 남동지역 에르가니 마을은 아직 보수적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여성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보다 사회의 요구에 맞춰진 삶을 요구받는다. 무툴루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겠다는 생각 하나로 6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딸을 아들만큼 사랑했다.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딸들이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바랐고, 무툴루 역시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기를 바랐다. 이들 가족을 화목하게 하는 것은 노래였다.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음악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남동생은 기타를 연주하고 누나들은 민요를 즐겨 부르곤 했다. 지역의 노래에는 사회와 맞서 싸우고자 하는 저항 정신이 가득하고, 이를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큐멘터리 <내 이름은 해피>는 쿠르드족 10대 소녀인 무툴루 카야와 그의 가정을 중심으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여성 혐오 범죄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19살 어린 나이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결승에까지 올랐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자신을 납치하려던 한 남자의 총에 맞게 된 이후 일어나는 일들이 그려진다.

두 달이 넘도로 사경을 헤매다 희박한 확률을 이겨내고 겨우 깨어났지만, 뇌를 뚫고 지나간 총알로 인해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좌절스럽고 힘겨운 시간이 계속되지만 무툴루는 정의를 위해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과 함께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고, 이 작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따르며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를 담아낸다. 무툴루, 그녀의 이름은 터키어로 '행복'을 뜻한다.

02.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을 살해하는 여성 혐오자들이다. 반대로 스튜디오의 인터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그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모양새. 그런 소식들을 누구보다 속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무툴루의 가족은 이 모든 장면이 여성 살해를 평범한 사고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분통을 터뜨린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니, 이유들이 있다.

불행의 시작은 무툴루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시라는 남성이 그녀에게 처음 데이트를 신청해 왔다. 사촌을 만나러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 왔다가 처음 무툴루를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녀가 14살일 때였고, 그는 벌써 20대였다.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당시 투병 생활 중이던 엄마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하루빨리 가수가 되어 가족의 생계를 돕고 싶었던 그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린 국가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게 되고, 결승에까지 오르며 국민 자매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행복하기도 했지만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다. 결승을 얼마 앞두지 않고 그 남자가 다시 연락을 해 왔고, 이번에는 결혼을 청해왔다. 이번에도 역시 무툴루의 선택은 거절이었고, 그의 태도는 그때부터 돌변하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스토킹을 일삼는 것은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다른 남자들이 TV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하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만나주지 않으면 집으로 쳐들어가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최악의 협박이 있던 날, 무툴루에게도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밤 10시, 두려움에 휩싸여 마지못해 집을 나섰던 그녀는 가해자 베이시의 총을 맞는다. 남동생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응급실에 이송되었지만 그 후 두 달이 넘도록 사경을 헤맸다. 처음에 병원에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총알은 그녀의 뇌를 뚫고 지나갔고, 귀 뒤쪽에는 여전히 파편이 박힌 채로 남아 있다. 처음 2년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망가져 버린 삶. 하지만 가해자 남성의 죗값은 단지 15년의 형을 받는 것으로 모두 마무리된다. 그때가 되어도 베이시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 못할 것이고 예전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을 텐데, 그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나마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가족이었다. 그중에서도 딜레크 언니는 무툴루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내려오기까지, 다시 휠체어에서 잠깐의 걸음이 가능해질 때까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재활과 회복을 돕는다. 영상 속에는 그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아마도 그 시간 속에서 언니 딜레크는 무툴루의 새로운 세상과도 같았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지에 대한 부정을 딛고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까지 언니의 존재는 삶의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너라고 거기 박혀 있고 싶겠어? 나는 총알과 화해했다."

04.
꿈을 이루기 직전까지 나아갔던 소녀의 꿈이 한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폐허가 되기까지 이 다큐멘터리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야기의 처음에 등장했듯이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무툴루 역시 튀르키예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여성 혐오자들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직 여성 위에 군림하려는, 자신의 욕망에만 휘둘리는 남성들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무차별적인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가 더 있다. 폐허와 같은 그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같은 여성인 언니 딜레크와의 교류와 회복이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강조된다. 이후 무툴루는 틱톡의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의 삶과 시청자들의 시선이 안정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에, 이 작품은 또 하나의 비극을 이야기의 후반부에 떨어뜨린다. 조금 더 정확히는, 또 하나의 폭력이 무툴루 가족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만다.

무툴루의 단짝과도 같았던 언니 딜레크가 남자 친구였던 육군 장교의 폭력에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이번에도 여성을 향한 남성의 총격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했고, 안타깝게도 언니 딜레크는 그 폭력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 가정에 들이닥친 남성에 의한 두 번의 폭력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닉 리드 감독이 일부러 그런 가정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골라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는 종신형을 선고받기에 이르지만, 무툴루는 그저 자신이 언니의 사건으로부터 멀어지기만 한 것 같은 무력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 이름은 해피>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용기가 무툴루의 마음 안에 싹을 틔웠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먼저 틱톡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남성들에 의해 물리적인 폭행을 당하거나 납치, 강간 등의 사건을 겪고 겨우 살아난 여성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다음은 사고로 인한 전신의 수축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발성을 고치고 작곡을 배우며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부르는 일이다. 다큐멘터리의 처음에서 고향의 민요에 사회와 맞서 싸우고자 하는 저항 정신이 가득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이제 폭력에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여성들을 보호하고 연대의 힘을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자 한다. 현 형사법이 여성 혐오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지켜낼 수 없다고 직접 목소리를 높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다른 혐오자들에게도 정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목소리를 내기 어렵지만, 무툴루는 자신의 노래가 튀르키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성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이래 튀르키예 전역에서는 25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여성 혐오자들의 공격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UN 추산으로는 매해 세계에서 47만 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 명목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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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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