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컷
와이드릴리즈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중년의 작가 히사(쿠사나기 츠요시 분)는 꽤 오랫동안 글을 써 왔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 둔 것이 없다. 아내와는 헤어졌고, 어린 딸과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먹고사는 일에 쫓겨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살아가는 것 역시 그렇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문학 작가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문학은 팔리지 않는 장르며 돈이 되지 않는다는 편집자의 아픈 소리만 듣게 될 뿐이다. 그러던 그의 눈에 방 안에 놓여있던 고등어 된장 통조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유년 시절의 잊지 못할 기억 하나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이렇게나마 글을 쓰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기억이기도 한 1986년의 여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 < 1986년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한 여름날의 추억이 남겨져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히사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인 1986년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함께 떠나는 모험과 여정의 순간들을 그려낸다. 로드 무비 형식을 통해 이들의 우정과 성장을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여름의 절정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이나 화려한 시절의 거센 기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미숙한 시절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정과 오해, 화해와 나아감의 지점에 놓이게 되는, 여름의 초입 혹은 끝자락의 모습을 닮은 순수하고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02.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든다 해도 그 여름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히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1986년 여름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름 방학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던 어린 히사(반카 이치로 분)에게 같은 반 학생이었던 타케(하라다 코노스케 분)가 찾아와 부메랑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해 온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돌고래다. 그 섬에 가면 돌고래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타케의 말 한마디에 히사는 동행을 약속한다.
사실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타케는 어딘가 모르게 또래답지 않은 모습을 가진 아이였다. 두 벌 밖에 되지 않는 러닝셔츠를 입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 일로 놀림을 받아도 태연했고, 반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매일 책상 위에 물고기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집중하곤 했다. 반대로 히사는 글쓰기를 잘해 이때부터 벌써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받았고, 학교가 끝나면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무리 지어 다니며 놀 궁리부터 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부메랑 섬을 향해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타케가 자신의 파트너로 히사를 선택한 이유는 지연되어 있다. 영화의 시작점은 이곳이지만 이야기가 나아가는 동안에 쌓이는 두 사람의 우정 위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이 이유 역시 그런 말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히사가 이때를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짧고도 커다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