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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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극의 전반부가 두 사람의 관계에 의해 진행된다면, 후반부에서는 대립하는 주체에 따라 극의 흐름이 바뀌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먼저 대립하는 것은 새로운 밀수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권 상사(조인성 분)와 군천의 새로운 권력이 된 장도리(박정민 분) 일당, 그리고 진숙을 필두로 한 해녀 집단이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손을 잡기도 하고 배신을 하기도 하는 세 집단의 모습이 후반부의 시작과 함께 놓인다. 군천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는 자와 기존에 갖고 있던 자신의 영향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그 틈 사이에서 어떻게든 다시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삼자 대립의 구도 중심에 있는 것이 불법 행위인 밀수라는 것이다. 이 행위의 성격 때문에 다른 집단이 끼어들 여지가 발생하고 영화는 이 자리에 이 계장과 세관 직원들을 밀어 넣는다. 후반부를 이끌어오던 권력관계의 재편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함께 등장하는 호텔 액션 시퀀스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대립 구도라고 할 수 있는 공권력과 해녀 집단 사이의 대결을 앞두고 기존에 존재했던 세력 다툼을 깔끔하게 정리해 내는 장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외부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원주민에 해당하는 장도리 일당이 권 상사 일당에 맞서 싸워 이겨내는 것에 작은 의미가 있긴 하겠으나 누가 이기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영화는 밀수꾼 사이의 대결이 아닌 공권력과 해녀 집단 사이의 대결로 넘어간 후다. 정확히 말하면, 공권력의 강력한 힘과 욕심 아래에 숨은 밀수꾼과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해녀 집단 사이의 대립.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이 영화 속 세 번의 전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진숙과 춘자의 갈등 구조가 형성되는 첫 번째 섹션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연합과 삼자 대립, 마지막으로 공권력과 해녀 집단 사이의 대립과 화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눴던 내용 가운데 전반부의 후자 내용과 후반부의 전자 내용이 두 번째 전환 지점에서 교합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편하겠다. 이렇게 잘 완성된 뼈대 위에서는 다른 주변 사건이나 인물들이 개입하더라도 얼마든지 편하게 소화가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인물이 옥분(고민시 분)이다. 핵심 인물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적재적소에서 활용되며 자신의 역할을 모두 해낸다. 그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억척이라는 인물의 내러티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밀수> 스틸컷(주)NEW
04.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70년대 중후반의 환기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들을 선별하는 과정은 물론, 의상이나 분장, 디자인 세트까지 모든 지점에서 작중 배경을 시청각적으로 완성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이는 작중 플롯 속에서도 엿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복수를 눈앞에 둔 진숙과 자신에게 씌워져 있던 모함과 거짓의 원흉을 직접 처단할 수 있게 된 춘자의 모습이 그렇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진숙의 아버지와 동생이 사고를 당하던 장면과 거의 동일하게 이루어져 있다. 단순 플롯의 반복이자 동일 사건의 재현. 고전의 많은 영화들이 따르던 문법 구조다.
물론 영화는 두 사람이 자신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는 방향을 통해 다소간의 변주와 반복되지 않는 시간의 의미를 그려낸다. 가수 김추자의 '무인도'를 배경으로 해녀 집단이 다시 뭍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이유다. 이 곡의 가사에 따르면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어둠을 헤치고서야 비로소 솟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조금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해가 놓여 있던 타인과의 화해, 그리고 오래 묶어두었던 과거의 자신과의 화해. 깊은 어창 아래에 감춰진 밀수품이 아니라 갑판 위에 쏟아냈던 전복 바구니처럼 환하고 행복하게.
지난 작품이었던 <모가디슈>(2021)에 이어 이번 영화 <밀수>까지. 이제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시대와 장르, 배경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액션 하나로 승부를 보는 감독이 아니라 완성된 영화 위에 액션이라는 자신만의 강점을 놓을 수 있는 감독이 되었다는 뜻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연출하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를 보느라 내내 행복했다고 말하고, 촬영 마지막 날에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바로 그 결과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우들이 그런 연기를 해낼 수 있었던 배경과 기저에는 감독의 역량과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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