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개그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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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전의 문장에서 '타인을 소비한다'는 표현을 썼다.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스트리밍 방송의 폐해이자 작품 속 인물들이 현재를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 채널의 다양한 속성과 여러 문제 가운데 전승표 감독이 왜 이 지점에 주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인터넷 방송 중에는 무엇을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잘 확립해 나가는 채널도 분명히 존재하고, 소비하는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대상이 타인이 아닌 본인으로 국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극 중 근성이 처음 종만에게 바랐던 합방을 통한 인지도의 수혜나 동창 모임에 종만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신에서의 주변 인물을 통한 환기의 수준이 아니라 타인의 약점이나 비밀을 직접적인 콘텐츠로 하는 지점을 이 영화는 굳이 자신의 정가운데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 이후, 자신 역시 종만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며 근성에게 접근하는 미정(고원희 분)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들 모두는 타인을 소비하는 형식을 통해 자신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며, 여기에는 그 어떤 종류의 규칙이나 가치, 도덕성도 놓이지 못한다. 그나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러운 짓에 속하며, 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위치 또한 똥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미정 정도를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위치에 둘 수 있겠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니 문제가 뭔지 알아? 넌 네가 똥물에 있는 줄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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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지점에서 타인의 약점을 콘텐츠로 삼아 일시적인 성공을 누리기까지, 일련의 상승 곡선을 타고 치솟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일면 하강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에는 근성이 쥐고 있는 종만의 약점이 있다. 실제로 종만은 학창 시절 당시 약한 동급생을 괴롭힌 전적이 있다는 것이 영화의 초반부 한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다만 이 폭력의 행위가 근성에게까지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상태로 이야기 위를 부유하고, 근성은 이를 손에 쥐고 마치 자신이 직접 폭력을 당한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 정도라고 해야 할까.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이 빈틈은 내내 의구심으로 남아 있다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는 방송으로 인해 으쓱해진 그가 이제 이 일이 자신의 직업이라고까지 떳떳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벌어지기 시작한다. 애초에 딛고 일어선 자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만큼 그 작은 틈을 노려 상황의 전복을 시도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기에 몰린 종만이 근성을 찾아와 또 한 번의 어두운 제안을 하게 되는 맥락 역시 여기에 있다. 그의 제안에 따라 근성이 합방을 위한 핑크 가발을 - 종만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 쓰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일말의 불안과 경계심을 모두 지우는 행위이자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스스로 넘었다는 의미로.